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언젠가 죽어서 하늘로 오른다고 했다.

그러면 오르지 못하는 것들은 죽지도 못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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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적이진 않으나 아동에 대한 학대 묘사가 있습니다. 열람 시 주의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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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원은 죽음에 가까워진다고 느낄 때 마다 자기 삶의 불행을 일부러 늘어놓고 구경하는 버릇이 있었다. 피가 흐르는 목을 부여잡고 할머니가 마늘을 까고 있던 집까지 뛰어가던 때, 전화통화로 크게 싸우고 이 년 동안 아무런 연락도 없던 어머니의 부고를 처음 듣는 친척의 입으로부터 들었을 때. 말 한마디에 심장을 부여잡고 쓰러지던 남자의 몸에 짓눌리면서 괜찮다는 말로 서예한테 전화 좀 해달라고 이야기 할 때 등을, 퇴언으로 인해 깊이 파고드는 업을 느낄 때 마다, 혹은 괴로 인해 살이 썩어드는 고통을 느낄 때 마다 소중히 모아온 유리구슬을 담요 위에 펼쳐두는 것 마냥 하나하나 검지로 짚고 굴려가며 그 때가 얼마나 끔찍했는지 곱씹는 못된 버릇은 서른일곱의 생일이 찾아오기 정확히 3개월 전인 2020년 9월 26일에도 존재감을 잃지 않았다. 이전 때와는 달리 상황이 좋다고 할 수 있겠다. 제대로 선생에게 치료를 받은 뒤였고, 오랜만에 담배를 입에 물고 태우며 하늘로 오르는 연기를 구경할 정도의 여유가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주마등이라고 부르는, 불행의 기억을 억지로 끌어대는 것에는 이유가 있었는데, 이제 와서는 의미 없는⎯그 스스로는 인정하지 않는 것은 둘째치더라도.⎯이 불우한 삶의 기원을 찾아내기 위함이 그것이다.

 

 뿌연 연기가 비틀비틀 하늘 위로 올라가면 소원은 공연히 너도 극락왕생 해라, 같은 말을 뱉는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잿더미를 보며 소원은 작게 한숨을 내쉰다. 이제는 진짜 그만둬야지, 하면서도 불행의 근원을 찾는 머릿속의 여정은 계속되었다. 순간, 매운 담배 연기가 눈가에 들어가 그는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소원은 담배를 대충 바닥으로 집어던진 뒤 발로 밟아 담뱃불을 끄며 다음날 아침 비질에 쓸려나갈 담뱃재의 끝에 대해 생각했다. 도형이나 아니면 정이 일찍 일어나 바닥을 쓸거나 할 것이고, 어쩌면 아침 일찍 영감을 얻어 또 기괴한 토피어리⎯여기서만 솔직히 전하는 고백: 하나같이 다 기괴한 게 소원의 마음에 쏙 들었다.⎯를 만들기 위해 나왔다가 바닥을 쓸 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아침 일찍 일어난 흡연자 퇴마사 중 누군가가 잠도 제대로 깨지 않고 비틀거리며 걷는 와중에 잿더미를 날려버리리라. 살아있는 모든 것은 언젠가 죽어서 하늘로 오른다고 했는데, 담배는 연기만 하늘로 오르고 잿더미는 땅에 가라앉거나 쓸려 어디 모를 곳으로 계속 가라앉는다. 그렇다면 잿더미는 죽지도 못하는 걸까.

뭐, 그런 생각들은 아무래도 좋았다. 소원은 지쳤고 더 이상 어떤 생각도 하고 싶지가 않았으므로, 엄지로 눈가를 비비고 난 뒤 소원은 눈을 뜬다.

 

 소원은 눈을 뜬다. 초등학교 6학년 시절에는 제대로 기억을 할 수 없더라도 지나친 무더위가 여름을 장악했기 때문에, 소원은 평소라면 거뜬히 올랐을 산을 헉헉거리며 올랐다. 매주 주말 서울에서 충청남도까지 내려오는 어머니와 만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고 또 가끔 바쁜 일이 있으면 그 주에는 안 오셨기 때문에, 소원은 그 짧은 시간 동안 어머니의 얼굴을 마주보는 일이 소중했다. 물론 이거야 열 살이 겨우 넘었을 때의 이야기고, 슬슬 퇴언이니 살혈이니, 소원을 퇴마사로 키우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손길에 어느 정도 닳고 난 뒤에는 잠깐 마주하는 어머니의 얼굴과 어머니의 선생인 초희의 얼굴보다는 오늘은 어디를 어떻게 다칠까, 어디를 그으면 덜 아플까 하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무언가에 대한 두려움을 품고 있으면 퇴언이고 살혈이고 제대로 되지 않아 두려움에 잡아먹히고 만다는 당신의 말과는 달리 어머니께서는 공포심으로 소원을 압박하고 잡아먹을 것처럼 들었다. 이따금 너무 심하다 싶을 즈음에야 초희가 말려 어느 정도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는데, 그날은 유난히 기온도 높았고, 습기도 심했어서…. 무어라 뱉은 말에 제 쇄골부터 목까지 찢겨져 나갈 때면 어머니의 호령이 뒤따르고, 업을 넘기기 위해 자신에게 다가오는 초희의 모습이 보였다. 백설처럼 흰 피부와 흑단 같은 머리카락으로부터 도망친 소원은 길을 지나가며 무슨 애가 저렇게 피를 흘리고 있느냐며 식겁하는 마을 어르신들을 무시하고 이렇게 아픈 건 다른 누구도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붉은 벽돌집으로 뛰어가면 벌레가 들어오지 않게 방충망을 쳐놓은 문 너머로 낡은 선풍기가 탈탈거리며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고, 그 너머에 문 쪽에 등을 보이고 전날 저녁에 물에 담가두어 잔뜩 불린 마늘의 껍질을 까고 있었다. 슬슬 사춘기가 찾아와 키가 부쩍 자란 소원은 이제 머리 위로 손을 뻗지 않아도 방충망이 열리는 파란 버튼을 누를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되짚어가며 문을 열고는 참았던 고통이 느껴지는 것에 외마디 소리친다. “병원!”

 

 소원은 눈을 뜬다. 충청남도에서 서울로 급하게 달려 나가는 새벽 버스에는 사람이 저밖에 없었어도 그는 짐으로 챙긴 가방을 잃어버릴 새라 품에 꼭 끌어안고 있었다. 그 안에는 농사일을 도우며 모아둔 소소한 금전과 졸업 기념이라고 어머니 몰래 택배로 보내준 초희의 선물인 검은 정장이 들어있었다. 이걸 입고 어디로든 입사를 하길 바란다는 초희의 편지 역시 가방 안의 봉투에 잘 보관되어있다. 동서울터미널의 넓은 하차장에는 아침잠을 이기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걷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새벽 세시 경, 어머니의 번호로 전화가 왔을 때 실수인 척 통화버튼을 누른 소원을 찾았던 것은 2년 전에 “너는 끝까지 어미 가슴에 대못이나 박는구나.” 같은 말을 끝으로 더 이상 아무 연락도 않던 어머니가 아니었다. 어머니의 오라비라고 자신을 설명한 남자는 금일 새벽 두시 오십칠 분에 소원의 어머니가 안타까운 사고로 작고하셨음을 알렸다. 곧 장례가 진행될 테니 늦지 않게 오라고. 그렇게 면접을 위해 입지 않고 남겨둔 검은 정장은 그대로 상복이 되었다. 재수도 없지. 소원은 서울의 시퍼런 새벽하늘을 올려다보며 그리 중얼거렸다. 아직 미처 내리지 못한 승객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다가온 기사님이 “학생, 얼른 내려.” 하고 말을 걸면 소원은 네에. 대충 대꾸하고 몸을 일으킨다.

할머니 살아생전 밟아본 적 없는 서울의 종합병원 지하에는 곡소리 하나 울리지 않는 조용한 장례가 진행되고 있었다. 날이 추워 급하게 챙겨 입은 붉은 패딩에 묻어있던 흙먼지는 하나같이 고급스러워 보이는 양복을 걸치고 있는 많은 퇴마사들에 비하여 자신이 얼마나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인지 깨닫게 만들었다. 눈을 깜빡이면 보이는 것은 하나같이 다 어머니를 닮은, 어머니의 얼굴이다. 소원은 이따금 친밀하게 다가오며 악수를 권하는 친척들을 마주보며 웃다가도, 침통한 분위기를 들여다보지 않으려 눈을 질끈 감았다 뜨곤 했다.

 

 소원은 눈을 뜬다. 커다란 몸집에 흰 러닝셔츠, 푸른 트렁크 팬티를 입은 남자가 가슴에서 피를 흘리며 이쪽으로 쓰러지고 있었다. 모든 것이 슬로우 모션처럼 지나간다. 고개를 돌려보면 서예는 입을 막고 비명을 지르고 있고 제 가슴에는 똑같은 피가 흘러나와 기껏 차려입은 정장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어린이날 선물을 받아본 적이 없다는 서예의 말이 못내 떠올라 챙겨온 장난감이 담긴 쇼핑백은 반쯤 뜯겨 열린 문 앞에 초라하게 널브러져 있었다. 모든 정황이 완벽했다. 어쩜 부모라는 인간들은 종종 이다지도 염치가 없나. 순간 소원은 혈관이 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면 이곳이다. 어땠더라. 문을 닫고 아이의 입을 막으려는 것을 뜯어 말리자 그가 제 얼굴을 후려쳤고, 순간 돌아보면 보이는 가슴팍에 손가락을 뻗어 가리켰던 것 같다. 퇴언을 쓰듯이… 아니 정말 퇴언을 사용했지. 오늘은 2020년 5월 5일. 서예에게는 최악의 어린이날이 되겠구나 하며 꺼지는 의식으로 핸드폰을 꺼내 서예에게 내밀었다.

 “단축번호 1번.”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아 이번엔 진짜 죽기라도 하는 줄 알았다. “도와줄 거야.” 그 말을 끝으로 소원은 눈을 감는다.

 

 소원은 눈을 뜬다. 2020년 9월 26일 새벽의 공기는 유난히 시렸다. 으이그, 멍청이. 담요 하나 안 덮고 밖에 나와서 담배를 피우고 앉아있냐. 툇마루 쪽을 돌아보면 거실에서는 선생이고 퇴마사고 소란스럽게 떠들고 있었다. 내일이면 아마 전부 끝이 나리라. 미묘하게 몰려오는 안도감에 소원은 느른히 미소를 걸친다. 그와 함께 불안감이 떠오르는 것은 이 이후의 삶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에 대한 불안 때문이다. 불행의 근원은 아무리 되짚어 봐도 찾을 수 없었다. 한때는 퇴마사로 태어난 것이 불행의 원인이라고 생각하였으나 괴로 인해 불행에 물든다는 인형사의 말이 그 판단조차 흐리게 만든다.

 

Q. 그렇다면 퇴마사로 태어난 건 불행한 사건이 아냐?

A. 태어난 것 자체를 불행하다고 하기엔, 누구의 말마따나 너무 슬프지 않냐.

 

 소원의 짧은 자문자답은 그렇게 끝이 났다. 누구는 도울 수 있는 힘이 있는데 돕지 못하는 건 옳지 않다고 말했고, 누군가는 두고 볼 수 없기에 제가 나선다고 말했다. 그들의 이름과 얼굴을 떠올리며 소원은 돌아가면 우선 자신을 이쪽으로 끌고 온 친척들에게 내일 데리러 오라고 전화를 걸자고 마음먹었다. 얻어 탈 차도 있지만, 그래도 할 얘기가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아무런 연락도 하지 않고 죽은 듯 지낸 4개월간 종종 받았던 연락 중 ‘서예는 이제 괜찮고 네 소식을 궁금해 한다.’ 같은 문장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툇마루를 밟고 다시 거실로 들어가기 전, 소원은 목걸이를 꺼내 거기에 걸린 플라스틱 반지를 한 번 만지작거린다. 봉사활동을 하고 있으면 어쩐지 자신이 유의미하게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사실에 살아있는 것도 나쁘지 않구나,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사는 건 불행하고 죽음은 언제나 도처에 깔려있지만. 적어도 “살아있어서 좋을 때도 있구나.” 같은 생각이 드는 사건을 겪을 수 있는 것 자체가 어떤 행운이 아닐까 생각한다. 흉운과 행운은 균형을 맞춰서 찾아온다. 지금까지 삶에 방문했던 흉운을 걷어내면 그 자리에 행운이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소원은 마지막으로 눈을 뜨고 바닥에 납작하게 밟힌 담배꽁초와 잿더미를 바라본다. 어머니께서는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언젠가 죽어서 하늘로 오른다고 했다. 그러면 오르지도 못하는 것들은 죽지도 못하는 걸까. 그 위에는 또 뭐가 있나.

 

에이, 몰라.

 

살면서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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