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에게 바다란 생명의 근원. 삶의 터전이자 삶을 다 바쳐 그리는 고향. 그들에게 바다는 낙원 그 자체, 죽은 이의 뼈가 새 살과 혼을 얻는다는 신비의 세계. 그들에게 바다는 요람이자 관, 삶의 시작과 끝을 함께 하는 동반자. 그들은 바다를 동경하고 욕망하며, 찬미하고 애정 하는 것으로 평생을 산다. 기필코 돌아가야만 하는 고향. 그럼에도 그 밑바닥을 알지 못하는 미지와 모험의 세계, 혀를 튕기는 것만으로도 벅찬 그 이름. 바다.
바다는 이들에게 물질이나 장소 그 이상의 개념. 전능한 신이자 평생을 함께할 벗, 또한 죽는 순간까지 그리워하며 가슴 졸일 연인.
그렇기에 바다와 그들을 떼어놓기란 불가능하다.
人魚死後日誌
(본제: About Sahuagin)
느린 파도가 선체에 부딪혀 갈라진다. 배의 흔들림으로 눈을 뜬다. 머리 위에서 삐걱거리며 흔들리는 조명이 못내 불안해 몸을 일으켰다. 정해진 시간마다 울리는 것으로 맡은 바 임무를 다 하던 핸드폰은 바닷물을 잔뜩 마신 뒤 우는 것을 그만둔 지 오래다. 그날 새벽의 일이 떠오르면 자연스레 인상이 찌푸려졌다. 내 표정을 보고는 카르마가 텁, 소리를 내며 입을 다문다. 잠시 날 바라보다가 방향을 잃고 흔들리는 눈이 안쓰럽다고 생각하는 한 편. 핸드폰을 완전히 고장내버린 범인이 그라는 사실을 상기함과 동시에 속에서 뜨거운 적의가 샘솟다가 꺼진다. 지금은 죽은 핸드폰에 대해 생각 할 때가 아니었다. 나는 좁혔던 미간을 푼다.
“카르마, 배는?”
졸음기가 다 떨어지지 않은 목소리 덕에 긴장이 풀린 것일지, 그게 아니면 내 표정이 풀린 것을 확인한 덕인지. 카르마의 눈동자에선 흔들림이 멎었고 이젠 똑바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내 질문을 천천히 곱씹듯 아무런 답이 없다가, 그는 아마 배가 있을 곳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곧 입을 연다.
“가까이에, 있어. 조금, 멈췄다가, 멀어지면, 따라가는, 게, 좋을, 것, 같아.”
단어의 사이사이 ‘쉭쉭’거리는 숨소리만 없었다면 더없이 편하게 들릴. 태평한 목소리였다. 카르마는 배에게서 시선을 거둬 나를 바라봤다.
“교대, 까지는, 시간, 남았어. 더, 자도…….”
“잠이 다 깼어.”
말하곤 느리게 몸을 일으켰다. 말을 하던 중간에 끊은 탓에 입에서 빠져나오려던 말은 그의 뾰족뾰족한 이빨에 찔려 소리를 잃었고, 잠시 쉭쉭 소리가 나다가 멎었다. 카르마는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또 시작이네.’ 한숨을 쉬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불난 집에 부채질 하는 겪이니 짐짓 온화한 표정을 지어보려 애썼다. 얼굴 근육이 도저히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네 탓이 아니야. 카르마.”
진심이라기엔 다소 무리가 있지만 거짓은 아니었다. 애초에 이렇게 출렁거리는 배 위에서 깊은 수면을 취하는 것은 진즉에 포기한 지 오래였으니까. 게다가, 핸드폰의 알람에 의지하지 않고 네 시간마다 깨어 배를 지켜보는 일을 반복하는 것을 거의 일주일간 반복하였기 때문에 이젠 자연스레 일어나게 되기도 하였고. 이러한 이유를 구구절절 늘어놓아 설명하여도 카르마는 나의 수면시간을 걱정 할 테니 ‘네 탓이 아니다.’라는 단순한 문장만큼 효율적인 방법은 없었다. ‘거 봐.’ 카르마의 양 입 꼬리가 위로 올라가 불규칙적인 치열이 드러나는 것을 보며 생각했다.
“카르마는 안 피곤해? 자도 돼. 배는 내가 지켜볼게.”
“나, 는, 괜찮, 은데.”
여전히 양 입 꼬리를 올린 채로, 다르게 말하면 웃고 있는 표정으로 카르마는 답했다. 답하고는 그는 잠시 쉭쉭거리다가 하늘을 올려다봤다. 늦은 새벽도 새벽이거니와 어제오늘로 날씨가 영 좋지 않아 하늘에는 별이 보이지 않았다. 구름 틈으로 작게 보이는 달빛이 전부였다. 그는 잠깐 아쉬운지 입 꼬리를 내리고 작게 숨을 내쉬었다. 의례적으로 그에게 손을 뻗어 푸른 비늘로 뒤덮인 등을 두드린다.
“깨어 있다고 별을 볼 수 있을 것 같진 않아. 한동안 못 잤잖아. 들어가서 조금 자.”
나의 말에 그는 느리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일으켰다. 이미터 남짓할 신장이다. 나도 자리를 옮기기 위해서 일어났고, 먼저 그가 있던 자리로 발을 옮기면 바다냄새가 물씬 풍겨온다. 물이 흐르는 소리,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가 한층 선명해진다. 손전등을 사용하여 배를 비춰봤다. 배는 여전히 눈이 닿는 곳에 있었다. 물결과 파도, 바람을 따라 방향 없이… 흘러간다. 물처럼.
누군가―라고 해봐야 이 배에 타고 있는 승객이자 선원은 나와 카르마뿐이므로, 카르마.―가 나무 바닥에 드러눕는 소리에 놀라 고개를 돌려보면 카르마는 내가 누워 잠들었던 곳에 그대로 누워 몸을 웅크렸다. 비늘이 바닷바람을 막을 테니 춥지는 않겠으나, 거의 이미터나 되는 거구가 왜 저기에서 몸을 구겨 넣고 잠을 청하는지는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넓지는 않아도 발을 쭉 뻗고 잘 선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하필이면 이 뱃머리에서 잠을 청하는가. 나는 그의 팔을 촘촘하게 덮고 있는 비늘 위를 찰싹 때렸다. 카르마는 깜짝 놀라 몸을 일으킨다. 걱정과 궁금증이 가득한 눈으로 쉭쉭거리는 그를 바라보다가, 그만 소리를 내고 웃어버렸다.
“왜 거기서 자는 거야? 뱃머리에서 자는 건 불편해.”
카르마는 대답 대신 날 빤히 바라봤다. 목의 아가미는 반쯤 열린 채 움직임이 없었고, 반쯤 벌어진 곳에서 잠깐 쉭쉭 소리가 났다.
“그러면, 너는, 왜, 여기서, 잤어?”
그의 질문에 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뱃머리에서 담요를 잔뜩 덮고 잠든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다. 잠을 자는 것뿐만이 아니라 식사와 샤워 시간을 제외하면 늘 나는 뱃머리에 앉아있거나 누워있거나 하였다. 햇빛을 막는 천막을 만들기도 하였고, 달빛을 가리는 천막 밑에는 조명을 달아둔 것도 나였다. 카르마는 나의 행동에 의문을 갖지 않았다. 오랜 시간 쌓여온 불평등과 차별적 시선으로 인하여 의심과 의혹이 본능처럼 내재되어있는 그의 부족들과 비교하면 참으로 편안한 습성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것이 못내 불편했던 나는 ‘드디어!’ 생각하며 그를 기특하게 여기기로 했다. 물론, 티는 내지 않았지만.
“여기에 있으면 멀미가 덜 나. 뒤쪽으로 가있으면 금방 속이 울렁거리더라.”
요약하자면 배 멀미. 내 말을 이해하기까지 커다란 눈을 느리게 끔뻑거리던 카르마는 탄식하듯 입을 살짝 벌렸다. 그러나 곧 새 의문에 고개를 갸웃거린다.
“배, 멀미, 면. 이, 배에는, 왜…….”
말을 하다가 그는 입을 다문다. 나는 아무 노력 없이 활짝 웃었다가, 바로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 다시 그를 보며 웃었다.
“언제 물어보나 했어. 드디어 물어봐주네. 기특해, 카르마.”
그가 이유를 알 수 없는 칭찬에 눈동자를 흔드는 것을 뒤로 한 채, 나는 손전등의 불을 밝혀 배를 비췄다. 잠시 원수를 노려보듯 내 안의 모든 분노를 끌어 담아 작은 배를 노려보다가, 곧 피식 웃는다.
“설명하자면 좀 긴데.”
나는 배를 바라본 채 중얼거렸다.
“이유를 설명하자면 좀 길어.”
졸업 과제를 총괄하여 담당하기로 되어있던 황 교수님은 내 시선을 외면한 채 중얼거렸다. 교수와 한 조를 짜 교수가 정한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만든다는 졸업과제 자체도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나만 특별히 담당하는 교수와 동행하지 않고 다른 조원마저 없다는 사실에 따지러 갔을 때 돌아온 답은 그게 다였다. 길어도 괜찮으니 설명해 달라는 말에 황 교수님은 가족과의 행사를 들먹이며 자리를 떴다. “문 잠그고 나와라. 상영회 때 보자.” 는 교수의 뻔뻔한 말을 들으며 망연히 서있던 나는, 문이 닫히는 걸 확인하고 숫자를 셋까지 센 뒤 중얼거렸다.
“좆같은 새끼…….”
주머니에 라이터가 있었고 교수의 사무실이니만큼 불이 붙을 종이로 가득했기에, 내키기만 한다면 사무실에 불을 지르고 나올 수도 있었으나 집을 나가려던 이성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끌고 온 덕에 간신히 방화범이 되는 결말은 면했다. 한숨을 쉬고 교수 사무실을 빠져나오자, 시간제 강사이신 김 쌤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내게 다가와 괜찮은지에 대해 물었다. 물론 전혀 괜찮지 않았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괜찮은 척을 하며 웃었고, 내 웃는 얼굴에 김 쌤은 쓴 웃음으로 답하였다. 김 쌤은 자기가 힘이 없어서 도움이 되지 못 하였다며,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도와주겠다는 말을 남긴 뒤 자리를 뜨셨다. ‘지금 도와주셔야 하는데요! 지금이 아니면 없는데요!’ 마음속으로 그렇게 소리쳤으나 이미 저 멀리 사라진 작은 등을 원망해봐야 나만 손해다.
부조리는 늘 중요한 순간에 찾아온다.
일이 이렇게 된 경위는 대강 파악하고 있다. 마땅한 명분 없이 술자리에 학생들을 불러대길 좋아하던 황 교수는 마지막 한 학기 동안, 조금 과장하자면 학생들의 재학기간 동안 술자리에 불러 어떻게 처신하는 지 살펴보며 조를 짰을 것임이 분명했다. 그리고 술자리를 권하는 문자에 답장도 않고, 전화도 무시하고, 술자리 참여는 당연히 하지 않는 나 같은 학생은 당연히 블랙리스트 일 순위였겠지. 그 알량한 속내는 쉽게 간파할 수 있었다.
‘교수라는 인간이…….’ 그리 생각하자 분통함이 속에서 끓어올랐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품에 끌어안고 있던 과제 가이드라인을 망연한 눈으로 바라보는 일 외에는. 나는 몇 번이고 확인한 주제를 다시 노려봤다. 주제에 대한 의문, 그리고 조 편성에 대한 불만이 체념으로 사라진 지금 드는 생각은 단 하나 뿐이다. ‘교수가 이런 단어 써도 돼?’
조원은 단 하나, 발표순서는 제일 마지막인 내가 맡은 주제는 “사하긴 생태 탐구”라고, 깔끔한 글씨로 적혀있었다.
“괜찮아?”
카르마가 묻는다. 나는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저 너머로 해가 떠오르고 있었고, 카르마는 교대 할 시간이라며 원한다면 자리를 내어 줄 수도 있다고도 했다. 나는 그저 고개를 젓고 배를 바라본다. 배는 여전히 그 자리에 떠있다. 뼈에 무슨 특수한 처리를 해놓은 것인지 물에 가라앉지 않고, 냄새를 맡고 날아오는 새도 없다. 비가 오는 날에도 저 배는 의연하게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오히려 저 배에게 묻고 싶었다. “괜찮아?”
인어 문화의 폐쇄성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그들의 생태를 알아내는 것은 분명 큰 발견이고 지식이 되긴 하겠지만, 그것은 누구를 위해서인가?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날 위해서 배에 올라탔으나 지금은 그 때와 다른 감정으로 배를 바라보고 있다. 우리가 저 배의 여행을 방해해도 되는가? 하는. 의문이었다.
“너희야 말로 괜찮아?”
물으며 카르마를 돌아본다. 그는 잠시 내가 한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 하다가, 이윽고 알았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곤, 입을 뻐끔거린다. 쉭쉭, 소리가 들렸다.
“괜찮아. 적어도, 나는, 아무렇지도, 않아.”
그리고, 부족들이, 동의했으니까. 카르마는 힘겹게 말을 잇는다. 그에게 들키지 않게 아가미로 시선을 향했다. 아가미는 반쯤 열린 그대로 멈춰있어, 움직이지 않는다. 하고 많은 인어들 중 왜 카르마였을까. 잠깐 그런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돌린다. 시선은 바다로 향했다.
본래 죽은 자의 여행에 간섭하는 것은 금물이다. 산 자에게 죽음 이후의 시간은 철저히 신비의 영역. 호기심을 갖는 것 까지는 용납되었으나 두 눈으로 지켜보려고 할 시 금기를 거스르는 것이 된다. 김 쌤의 도움으로 인어 부족을 대표하는 학자에게서 몇 번이고 들은 주의였으며, 끝끝내 지키지 못한 경고이기도 했다. 지금 이렇게 죽음 너머의 시간을 바라보고 있으니.
이왕 찍는 거 좋은 장면이 나왔으면 좋겠다며 이를 바득바득 갈던 일주일 전이 꿈처럼 느껴졌다. 잔잔한 물결, 가끔 머리 위를 날며 우는 바닷새들과 끝없는 지평선에 불안은 사라지고 단순히 긴 휴식을 허락받았다는 감각이 크다. 인어들이 왜 그렇게 바다를 꿈꾸는지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자연스레 카르마에 대해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카르마는 천막에서 얼굴을 빼내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부족의 다른 이들이 물을 꿈꾸는 것과는 전혀 다르게, 그는 하늘을 꿈꾸고 있다.
“내 아들은 물을 꺼려한다.”
부족장은 그리 말했다. 말하고는 메기처럼 긴 꼬리를 손으로 쓸어 넘기는 것이 버릇인 것처럼 보였다. ‘배’의 모험을 따라가 기록하는 것을 허락받았을 때의 일이다. 그는 다시 한 번 자신의 외동아들 카르마는 물을 두려워한다고 이야기했다. 그 이유는 이미 알고 있어서,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자 부족장은 고맙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에 적응하기 위해 오래 교육해왔고, 그도 노력하는 것처럼 보이나……. 좀처럼 좋은 방향으로 바뀌진 않더군. 다만 카르마가 어젯밤에 내게 이렇게 부탁해왔다. 자신도 배가 어떻게 되는지 두 눈으로 지켜보고 싶다고. 보게 되면, 죽음의 끝과 삶의 기원을 보게 된다면 더 이상 바다를 두려워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말이야. 그리하여, 본래 예정된 것과는 다르게 카르마를 동행시키는 것을 허락해주었으면 하는 바이다.”
나는 눈을 깜빡였다. 카르마가 바다로 가고 싶어 한다고? 설마. 의심을 담아 부족장을 바라봤으나 부족장의 눈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인간의 눈은 입만큼 말한다지만, 인어들의 눈 또한 입만큼 말한다. 나는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려울 것도 없어요.”
나는 카르마를 바라봤다. 바다에 왔으나 그는 여전히 하늘을 꿈꾼다. 닿을 수 없는 하늘이 닿을 수 있지만 두려운 바다보다 더 낫다는 그의 판단이리라. 왜 이렇게 하늘만 바라보는지, 그를 잘 몰랐을 때에는 이해를 할 수가 없어 무례한 질문도 하곤 했다. 바다에 빠진 핸드폰을 결국 찾지 못했을 때의 일이다.
인어는 하루에 네 시간만 자도 숙면을 취한 것이지만, 인간은 그렇지 않다. 더구나 다른 과목의 마지막 시험을 전부 끝내고 과제에 착수한 나는 하루에 열두 시간을 자도 모자라게 느껴졌다. 때문에 한 번 잠들면 다시 일어나기가 어려웠던 나는 핸드폰의 알람에 의지하였으나. 첫째 날 새벽 알람이 울리고 내가 일어나지 않자 카르마가 알람을 끄기 위해 노력하였고, 그 결과 손에 힘을 너무 준 탓에 미끈거리는 인어의 손에서 핸드폰이 빠져나가 바다로 날아간 것이다.
늦게 깨어난 나는 바로 핸드폰의 부재를 알아차렸고, 자초지종을 들은 카르마에게 대뜸 이렇게 물었다.
“인어잖아. 물에서 찾아볼 생각은 못 했어?”
“나, 수영, 못, 해서. 못, 들어가, 봤어.”
카르마는 미안하다며 연신 고개를 수그렸다. 그 때, 쌓였던 모든 스트레스가 폭발하는 것 같았다. 부조리는 어느 상황에서든 유효하다. 약자가 있으면 그보다 더한 약자가 생기는 법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카르마가 그랬다.
“들어가 볼 수는 있잖아. 가라앉지만 않으면 되잖아. 아무리 아가미가 기능을 제대로 못 한다지만 비늘이 있잖아. 너.”
카르마는 잠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고, 그의 질문에 나는 아차 싶어 급히 사과했다. 카르마는 괜찮다고, 자기가 잘못 한 일이니 화를 내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으며 나는 그 반응이 못내 불편했다. 당사자가 괜찮다고 하는 상황에서 내가 더 불편한 태도를 보이면 실례를 범하는 것이므로, 나는 잠자코 다시 한 번 사과하는 것으로 끝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뒤에, 카르마는 별을 가만히 올려다보며 나를 불렀다. 나는 유난히 잠이 오지 않던 그날 밤에 누워서 눈을 깜빡거렸고, 그와의 동행이 편하게 느껴지기도 하여 가만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게, 제일, 힘들어. 가라앉지, 않도록, 힘쓰는, 거.”
그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진 않았으나 나는 느리게 몸을 일으켰다. 뭐라고 말해야 할까, 그런 고민을 꽤 길게 하였으나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단 하나뿐이었다.
“고생 많았어.”
카르마는 픽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또 얘기해보니 고생했다는 말은 처음 들어봤더란다. 그리 말을 하고 나서도 내내 맞는 말을 한 것인가 고민했던 나는 다행이라고, 답하며 그와 마주 웃었다.
이후 배에 대한 얘기는 거의 하지 않았고, 인어들의 풍습에 대해서도 별로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주로 나에 대한 이야기―배 멀미도 결국은 배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지니 빼놓았다.―를 했고, 카르마는 주로 별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별에 대한 카르마의 지식과 관심은 엄청났으나 부족장의 아들이라는 역할로 인해 그 지식을 사용할 기회가 없어 아쉽다고 이야기했다. 사람들의 세상에 나가면 별을 연구할 수 있을까. 그런 기대를 품었던 적도 있으나 세상에서 인어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듣고 나서는 안타까운 기색을 숨기지 못하였다. 부조리는 늘 그 자리에 존재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나는 억지로 생각을 끊었다.
바닷가에서 지낸 삼주의 시간, 그리고 배 위에서 보낸 일주일을 통해 우리는 꽤 가까워졌다. 친구라고 해도 괜찮을 정도로. 카르마는 생각 이상으로 괜찮은 녀석이었고, 나도 카르마에게 좋은 친구가 되었으면 했다. 배의 촬영이 전부 끝난 뒤에도, 친구로 남았으면 좋을 텐데.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해가 하늘 한 가운데에 떴고, 카르마는 바다 쪽으로 손을 뻗어 물을 떠서는 자신의 얼굴을 씻었다. 바닷물을 길어 올려 자신의 팔과 등에 끼얹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씻으러 들어갔다. 곧 카르마는 일어나서 다리를 한쪽씩 바다에 담가 몸을 적실 것이다. 인어들에겐 그것이 인간의 목욕과 비슷한 것이었으므로, 자리를 떠주는 것이 예의다. 말끔하게 씻고 나왔을 때는 카르마가 푹 젖은 모습으로 한숨을 푹 쉬었다.
“비가, 와. 오늘은, 안에서, 자야, 할, 거야.”
말을 마치고 카르마는 나를 바라본다. 괜찮으냐고 묻고 싶은 것처럼 보여 나는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말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카르마는 괜찮아? 어제도 별을 제대로 못 봤잖아.”
내 질문에 카르마는 샐쭉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말하고는 쉭쉭 소리를 냈다.
“배가, 조금, 걱정이야. 내가, 자주, 나가볼게.”
“아니야. 우산도 있는데 뭘. 나도 가끔 나가볼 테니까 넌 좀 쉬어.”
카르마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보면 가끔 동생 같기도 해서, 마냥 웃음이 나왔다.
카르마는 바닥에 몸을 뉘였다. 나는 침대를 슬쩍 바라보다가, 그의 옆에 이불을 깔고 누웠다. 카르마는 잠시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날 바라봤다.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바닥하고 가까울수록 멀미가 덜 나. 그냥 느낌상 그런 건지도 모르겠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카르마와 가까이 있으면 배 멀미가 거의 없다. 카르마의 옆에 누운 것은 이러한 까닭이다. 비가 오는 날이라 바깥은 어두웠고, 어제 잠을 제대로 잔 것도 아니어서 금방 잠이 몰려왔다. 잘 자라는 인사도 없이 그대로 잠들었다.
인어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19년 12월 18일이다. 배를 타고 수도로 도착해 정부에 지원을 요청한 것이 시작이었다. 그들은 학자의 질문에도 답하지 않았고, 취재진들에게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비늘로 뒤덮인 몸과 양서류를 연상시키기도 하는 얼굴의 생김새는 일반 대중들의 불쾌감을 자극하여 금방 괴물 취급을 받게 되었으나, 2020년 4월, 정부가 지원을 시작하여 남쪽 바다 근처에 터를 잡은 이후로는 공공연한 “괴물”취급 또한 금지되었다. 다만 그 지원이라는 것이 그들을 하나의 지역에 가둬두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게끔 하는 것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는 없었다. 사람들의 노골적인 혐오 또한 잠잠해 졌지만, 인어는 언제나 사람들에게 기분 나쁜 존재일 뿐이다. 그리하여 “사하긴”이라는 단어가 수면으로 떠오른다. 그들의 정식, 그리고 학계에서 인정하는 명칭은 ‘인어’였으나, 일반 대중들은 그런 녀석들을 인어라고 인정하지 못한다며 사하긴 이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학자들은 사하긴의 미개한 문화를 집중 조명했고 취재진들은 사하긴의 지식 부족으로 발생한 사고를 사건이라며 떠들었다. 활동가들은 사하긴들을 보살피고 이끌어야 할 약한 존재라고 여겼으며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은 그놈들이―이들에게는 사하긴이라는 단어자체가 어렵다.―세금을 다 빨아먹는다고 투덜거렸다.
30년이 지난 2050년에도 인간의 시선은 변함이 없어서, 나 또한 인어의 생태를 연구하고 촬영하라는 과제를 받자마자 ‘날 제대로 엿 먹이려는 거로구나. 라 생각했다.
인어들이 사는 남쪽 바다 근처의 지방들은 지역 색이 강하여 외부인에 대한 경계가 심했다. 때문에 남쪽 바다의 끝자리, 변두리 중의 변두리에 자리를 얻은 부족은 끊임없이 차별과 멸시의 시선을 받아내야만 했다. 내가 방문을 요청했을 당시에도 인어들은 덮어놓고 날 의심하였으니 말 다했지. 나는 내가 방화범이 아님을 증명해야만 했고, 라이터는 압수당하였으며, 고의로 어떠한 피해도 주지 않겠노라고 맹세도 해야 했다. 다만 그들을 원망할 수는 없었다. 그들의 마을로 들어서며 나는 사람들이 얼마나 괴롭혀댔으면 이럴까. 싶어 잠깐 서글퍼졌을 뿐이었다.
인어들의 신체 성별은 남녀로 구분이 되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드물게는 존재하며, 우선 남녀 모두 신체적 특징이나 신체능력의 차이는 크게 존재하지 않는다. 남성기의 경우 평소에는 체내에 수납되어 있다가 필요한 때에 나타나니 눈에 드러나는 구분 점은 크게 존재하지 않는 편이다. 알을 낳기 때문에 젖을 물릴 필요가 없어 여성의 유방도 발달되지 않는다. 물리적인 힘은 비슷한 수준이며 각자 개인차가 날 뿐. 때문에 주어지는 역할도 성별에 따라 차이가 발생하지 않는다.
첨단기술을 사용하기에는 자원도 공간도 확보되지 않았으니 그들은 전기를 사용하지 않으며, 흙과 나무로 집을 짓고 사냥과 채집을 하여 생활한다. 땅 위에서 자라는 음식들은 애초에 그들의 입에 맞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때문에 그들은 해초를 찾아오고, 생선을 사냥해온다. 마을 구성원의 대부분이 사냥을 나가고 돌아와 요리사들이 요리를 하고, 자신이 먹을 만큼의 양만 먹은 뒤 남기는 법이 없게끔 처리한다. 그들에게는 잉여생산물을 다른 것과 교환할 수도 없으니 남기지 않는 방법을 채택했다고 한다. 토요일 날에는 다음날의 것까지 사냥을 해온 뒤 그날 저녁식사를 마치고 난 뒤엔 쉬며, 그들은 특유의 발성구조를 이용한 노래를 부르고 시를 쓰거나 조개를 주워 집안을 장식하는 것으로 휴일을 보낸다.
바깥에서 꾸준히 멸시와 억압을 보내는 터라 내부에서는 크게 부조리함과 불평등은 보이지 않는다. 부족장이 존재하기는 하나 마을과 부족의 규모가 원체 작아서 전체의 의견을 모두 수용하여 타협점을 찾아낼 수가 있고, 개인 간 사이가 나쁜 이들은 존재하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사고방식의 차이와 이런저런 사건들로부터 발생하는 불화이지 다른 이유가 개입되어있지는 않다. 수가 적기 때문에 가능한 환경이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어서, 부럽긴 하지만 넘볼 수는 없겠구나. 싶었다.
이들은 고유의 언어가 있고 그것은 인어들 특유의 발성구조를 통해 말하기 때문에 쓰는 것은 가능했지만 내가 그렇게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아가미가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은 되었지만 어쩐지 창피하다는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원어민의 땅에 가서 그들의 말로 대화를 할 수가 없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 또한 들었다. 웬만하면 그들의 언어를 받아 적어 필담을 나누었으나, 그들은 이미 인간들의 언어를 듣고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 모두 배워둔 뒤였고 따라서 편하게 인간의 말을 사용해도 된다고 내게 이야기 하였다. 마냥 감사만 할 수는 없었으나, 일단은 감사하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상황이었다.
삼주동안, 나는 그들이 이 마을 안에서만 생활하기로 약속한 것과 때문에 사회로 진출할 수 없다는 이야기 까지 듣고 꽤나 불편한 마음을 갖고 있는 상황이었다. 나를 안내해주던 마을의 학자 선생님은 어쩔 수 없는 일이며, 바다 속에 있을지도 모르는 동포들이 뭍으로 나와 바다에 있을 도시로 부족을 안내하지 않는 이상, 더 넓은 세상을 보는 것은 무리일지도 모른다고 한탄했다. 심지어 그 도시라는 게 존재하는지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전설에 근거한 추측일 뿐. 그리고 모두 물 밑의 도시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바다로 돌아가지 못하는 한 명이 존재한다고 학자 선생님은 말했다. 그게 카르마였다.
카르마와 처음 만났을 때에도 그는 별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른 인어들처럼 아가미가 달려있기는 하나 아가미가 늘 반쯤 열린 상태로 고정되어 있어, 제 기능을 하지 못해 물속에서의 호흡은 불가능했다. 그는 사냥에 참여하지 못했고 부족장이나 그들의 친구가 그의 몫까지 사냥을 해왔다. 사냥에 나가지 못하는 대신 그는 요리를 배웠으며, 꽤 실력이 있는 요리사로 유명했다. 그리고 원칙대로라면 그가 다음 부족장이 되어야 했으나 사냥을 나가지 못한다는 이유로 다른 부족장 후보를 찾는 중이라는 정보까지 알게 되었다. 아가미의 장애로 인해 카르마는 말을 하는 것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말과 말 사이에 늘 따라붙는 ‘쉭쉭’ 소리 때문이었다. 주변의 그 누구도 그 소리에 대해 뭐라 하지 않지만, 집단에서 자신만 다른 특징을 갖고 있으면 신경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법이다. 나와 눈이 마주쳐서, 입을 열려는 그에게 나는 굳이 하고 싶은 말이 아니면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했다. 내 말에도 그는 꿋꿋이 인사를 했지만, 특별히 말이 필요한 상황이 아닌 경우에 그는 주로 손으로 가리키거나, 고개를 끄덕이거나. 표정으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곤 했다.
그가 편하게 말하기 시작한 건 배 위에서부터다. 뭍에 서있을 때에 카르마는 자신이 별을 좋아한다는 것과, 자신의 이름 외에는 말하지 않았다. 만날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카르마는 주로 필담을 선호하였고 단어가 기억나지 않거나 떠오르지 않을 때에는 그림을 그려서 표현하였다. 나는 카르마의 그러한 표현에 똑같은 방법으로 답을 하곤 하였으나 그것은 누구나에게 똑같이 행동했기에 특별할 것이라곤 없었다.
처음에는 그들의 장례 절차에 대해 아는 바도 없었고, 삼주 간 그 마을에서 생활하면서도 그 부분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았다. 부족의 수가 적으니 이들에게 죽음은 치명적일 것이었다. 그러니 굳이 말을 꺼낼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으나 사고는 늘 갑작스레 찾아온다.
안타까운 사고의 희생자가 된 것은 라마라는 이름의 아이였다. 태어난 지 십이 년이 겨우 되었으며, 사냥을 나갔다가 호흡에 문제가 발생하여 결국 숨을 쉬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렀다. 흔히 있는 일이었으며 이는 거의 대부분이 부모의 부주의로 결론이 난다. 누구 하나 책망하는 이가 없으며 그저 슬퍼하는 이를 달랠 뿐이다. 죽음이라는 개념은 어느 곳에 놓여도 그 존재감이 형형한 법이라는 걸, 그 때 처음 알았다.
그 사고 덕에 그들의 장례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는데, 그들은 죽은 사람의 뼈를 발라 모으고, 그 뼈를 조립하여 배로 만든다. 이 점이 유난히 특이하여 신경이 갈 수밖에 없었다. 장례를 할 때가 되면 그 전에 생선을 잔뜩 사냥해오고, 마을의 사람들은 장례에 집중하여 사냥에 나가지 않는다. 요리사들은 죽은 이의 살을 갈라 뼈를 발라내고, 사냥꾼들은 나무로 만든 배―지금 나와 카르마가 타고 있는 배가 바로 이 배다.―를 타고 바다 멀리 토막 난 살과 장기를 뿌린다, 이에 대해 학자 선생님께 물어보자 인어들은 살과 혼보다 뼈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말을 해주셨다. 살도 혼도 모두 뼈로부터 기원하여, 결국은 뼈가 생명의 본질이라는 것이 그들의 사고방식이다.
뼈를 모두 발라내 모으면, 그것을 부족장에게 건네고 부족장은 그것을 조립하여 배로 만든다. 조립하는 과정은 모두가 지켜본다. 중요한 의식이기에 휴식이 없이 계속 이어지며, 급한 볼일을 보러 갈 때를 제외하고는 움직여서도 안 된다. 그리하여 만들어진 배는 특수한 처리를 한 뒤 바다로 떠나보낸다. 바다에 있을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그리고 삶이 끝나도 여행은 계속되기를 바라는 살아있는 자들의 바람을 담은 의식이었다.
잠에서 깨어도 비는 그칠 줄을 몰랐다. 나는 우산을 쓴 채 객실에서 나와 손전등을 켜 배를 비춰보았다. 배는 비에도 아랑곳 않고 물결에 쓸려 흘러가고 있다. 비가 오는 것이 그리 드문 일은 아니었으나 이번 비는 꽤 굵었다. 나는 배를 빤히 지켜보다가 하는 수 없이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 흔들리거나 넘어지지 않게 설치해두고, 귀한 카메라가 비에 젖지 않도록 비옷까지 입혀둔 뒤 객실로 돌아왔다. 전날 밤을 샌 탓인지 카르마는 여전히 곤히 잠들어있다. 가끔 우물거리는 소리를 내거나, 아가미에서 쉭쉭거리는 소리를 내는 것 외에는 조용했다. 나는 그의 옆에 앉아 물을 마시곤 느리게 한숨을 내쉬었다.
꽤 멀리까지 왔다. 남쪽 바다는 중심 바다로 이어지고, 중심 바다에 도착하면 우린 어쩔 수 없이 돌아와야 한다. 나무배의 내구도가 아무리 좋다고 하여도 장거리를 이동하기에는 무리가 있었고, 애초에 이미 약속한 시간도 초과하고 말았다. 우리는 일주일만 지켜보고 돌아오기로 되어있었다. 돌아가는 건 빠르니까. 그렇게 생각하여 카르마와 합의 한 뒤 며칠을 더 머물기로 한 것인데, 이러다간 한 달이 지나도 답이 나올 것 같지가 않았다.
애초에 죽음 이후의 모험을 탐구한다는 발상 자체가 글러먹었다. 왜 그랬을까. 이왕 하는 거 대단한 걸 만들어서 교수 놈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주자고 작정하긴 하였지만, 이렇게까지 무모한 선택을 했을 줄은 내가 알았겠냐고.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한 것도 이런 선택을 한 것도 전부 나였기에, 불평을 할 수는 없었다.
배를 타고 바다를 떠도는 날이 지속 될수록, 내 안에는 한 가지 바람이 생겨났다. 가급적이면 아무 일도 없었으면 좋겠다. 배가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면 좋겠다. 그래서 내가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 무언가를 밝혀내려 하는 것 보다는 아무리 애를 써도 닿을 수 없는 미지의 영역에 두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만 머릿속에 떠올랐다. 지금까지는 그것을 억지로 짓누르고 탐구욕을 끄집어냈으나, 지금은 더 이상 그럴 수가 없다. 나는 카르마의 옆에 누워 몸을 돌렸다. 카르마를 바라본다.
다만 카르마에겐 그 배가 어떤 끝을 맞이하는 지 보여주고 싶었다. 죽음의 끝을 목도하고 새 삶의 시작을 마주한다면, 그것의 기원이 되는 바다를 더는 두려워하지 않을 거라는 그의 기대가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막연하게라도 그에게 희망과 낙관을 주고 싶었다. 그가 나에게 베푼 친절에 대한 보답으로 줄 수 있는 것이 그것뿐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이상 카르마를 바다에 붙잡고 있을 수는 없었다. 카르마는 다시 땅으로 돌아가고, 나 또한 원래 있었던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배의 끝을 지켜보지 못한대도 괜찮았다. 그래도 많은 것을 보았고, 많은 것을 알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으며 그들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시작된 계기는 그다지 좋지 않을지 몰라도 결과만 놓고 보자면 무척이나 만족스러웠다. 교수 놈에게 감사인사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 않을 거지만.
나는 카르마가 깨어날 때 까지 그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가 눈을 뜨면 돌아가자고 이야기를 할 테다. 그간 카르마가 열심히 힘써줬으며 죽음의 끝을 우리 살아있는 사람들이 지켜보는 것은 무리였을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그를 달래기로 마음먹었다. 어쩌면 그는 상황을 빠르게 이해하고 내 의견을 받아들일지도 모른다. 이러나저러나 의젓하니까. 가끔은 너무 의젓해서 탈이지만. 너무 피곤하게 산다니까……. 이런 생각을 하며 잠이 들었나보다.
날 급하게 부르는 목소리와 쉭쉭거리는 소리에 눈을 떠 몸을 일으켰다.
“무슨 일이야, 카르마?”
“배, 배, 배, 배.”
카르마는 급하게 말하고는 다시 객실 밖으로 뛰어나갔다. 나는 잠시 그 자리에 앉아 있다가 급하게 몸을 일으켰다. 비는 이미 그쳐있었고, 언제 비가 내렸냐는 듯 커다란 해가 내리쬐고 있다. 손전등의 불을 밝힐 필요도 없다. 나는 뱃머리에 서서 주변을 둘러봤다.
“돌겠네.”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배가 사라졌다.
“물의 흐름은 정직하다.” 부족장은 배의 조립을 끝마치고 그들의 언어로 말하였다. 말하는 거라면 모를까, 듣는 법은 이미 다 익혀두었기 때문에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어렵지 않게 알아들을 수 있었다.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법칙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부족장의 목소리는 장장 여덟 시간의 고된 작업을 끝내고도 힘이 빠져나가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오히려 평소 말하는 것보다 더 힘이 넘쳤다. 그 목소리에는 엄숙함이, 결의가. 그리고 죽음이 결단코 슬프기만 한 일은 아님에 대한 신앙심이 담겨있었다. “살고 죽는 것 또한 그렇다.” 그는 계속해서 말을 잇는다. “삶의 불가피함은 물의 흐름과 닮아있다.”
민물이 흐르고 흘러 바다로 이어지는 것처럼, 그들의 삶도 죽음을 맞이하면 바다로 이어지게 된다. 그들의 삶 전체는 바다를 향하고 있으며 뼈를 이어 붙여 만든 배 또한 그렇다. 죽음에 이르고 나서야 완전히 바다로의 여행을 떠난다는 것이 왠지 쓸쓸했다.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 그런 모험을 그 어린 아이가 간다는 것이. 죽음 자체를 슬프게 여기기보다는 장례 절차에 대해 의문을 품었던 것 같다. 그리하여, 배가 다 만들어 지고 난 뒤 부족장에게 그렇게 물어볼 수 있었을 것이다.
“저 배의 여정을 따라가고 싶습니다.”
배는 만들기를 완성한 뒤 삼일 간 중요한 것을 보관해두는 창고의 가장 깊숙한 곳에 숨겨둔다. 그 말인즉슨 배가 떠나기 까지는 삼일 간의 유예가 있다는 뜻이고. 부족들은 광장에 모여 커다란 불을 피우며 죽은 이와 슬퍼하는 이들을 달래는 노래를 부를 때에, 내가 뭔가 해야 하는 일이 있다는 뜻이었다. 나는 이들의 삶을 살펴보기 위해 찾아온 연구자이다. 연구자는 어떠한 순간에도 미지의 지식을 찾아내야 했다. 그게 옳은 도리이다. 부족장은 나의 요청에 어이가 없어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나는 학자에게 이러한 연구의 정당성을 설명하고, 학자와 함께 부족장을 찾아가 몇 번이고 부탁해 보았으나 승낙의 말을 받아내지는 못했다. 요청이 승낙 받은 것은 배를 떠나보내기 하루 전의 밤이었다. 아마 카르마 덕에 이러한 모험도 가능하게 되었으리라. 그에게 많은 것이 감사했다. 불만도 조금 있긴 했지만. 그건 그냥 사소한 일들이다.
그렇기에 카르마는 배가 어떻게 되는 지 지켜봐야 했다. 지켜봤으면 좋겠다.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근원 없는 기적에 바랄 정도로…….
나는 카메라가 배의 움직임을 포착했기를 빌었다. 뱃머리의 바닥은 이미 다 말라있어 그 자리에 주저앉아 살펴보아도 크게 문제가 없었다. 배는 비를 맞으며 이리저리 방향을 움직이다가, 갑자기 홱 머리를 돌리더니 뒤로 돌아갔다. 그 이후에는 카메라에 잡히지 않는다.
배를 돌려야했다. 카르마는 배의 운전법을 완벽하게 익혔으나 잔뜩 놀란 카르마가 배를 돌리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나 또한 배를 운전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던 것이 다행이다. 나는 배의 방향을 틀어 배를 쫓기로 하였다. 카르마는 기둥을 붙잡은 채 배가 보이는지 아닌지 탐색하고 있다. “안, 보여!” 카르마가 소리쳤다. 나는 배가 빠르게 움직이게끔 조치를 취한 뒤 카르마의 옆에 섰다. 우리는 거의 중앙 바다에까지 도달했었다. 그러나 갑자기 중앙 바다로 향하던 배가 남쪽 바다로 선로를 돌린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바다가 역류할 일은 없었다. 부족장의 말대로, 물의 흐름은 정직하다. 법칙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다만 파도에 휩쓸린 것일지도 모른다.
하늘이 붉어지고 별이 떠오를 때 까지 배를 찾을 수는 없었다. 배를 지나친 것은 아니었다. 나는 우리가 타고 있는 배를 멈춰 세운 뒤 카르마에게 기대섰다. 오랜 시간 서있어서 그런지 다리가 아파왔다. 앉아도 괜찮지만, 그러고 싶지가 않다. 카르마는 느리게 팔로 날 감싸 안는다. 잠시간 우린 아무런 말도 나누지 않았다.
“잘, 됐어.”
입을 연 것은, 놀랍게도, 카르마였다. 나는 고개를 들어 카르마를 올려다봤다. 또 별을 보고 있겠거니. 하였으나 카르마는 가만히 날 바라보고 있었다.
“차라리, 이렇게, 없어져서… 아무도, 모르는, 게,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 했어.”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카르마는 잠시 쉭쉭 소리를 냈다가 끼르륵, 거리며 웃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별을 바라봤다. 이윽고 그는 인간의 말이 아니라 그들의 말로 내가 모르는 것을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인어들의 뼈는 염분을 띄우는 물에 금방 녹아버리며, 뼈를 이루고 있는 물질들은 아주 잘게 분해되어 바다 속 미생물의 먹이가 되거나 아주 드문 경우 물고기들에게 먹힌다고 한다. 그도 부족장에게 들은 말로, 꽤 많은 양의 비를 맞아 특수한 처리가 모두 벗겨진 뼈는 그대로 녹아내려 지금쯤 바다 전체에 퍼졌을 것이다. 죽음의 끝에, 바다가 있다고, 카르마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결국 그들은 죽어서 바다가 된다. 그 말을 전부 듣고 있던 나는 아무런 답도 하지 않고 그에게서 빠져나왔다.
“나는, 사람들이, 몰랐으면, 좋겠어.”
죽음에 대한 신비는 지켜져야 한다. 미지에 대한 낭만은 존속되어야 한다. 그것이, 모든 비밀을 알고 있는 카르마가 다른 이들 대신 나와 동행한 이유이다. 인어의 죽음, 그리고 그 죽음의 끝자락에 있는 어떠한 순간에 대한 해석은 서른 명의 마을 구성원들 모두 제각각이었다. 어떤 이들은 배를 완성하는 순간 배에 혼이 실리고, 배가 모험을 끝마치는 순간 하늘로 승천 한다 믿었고 어떤 이들은 배가 바다 속에서 새 혼과 살을 얻어 물 밖으로 새로 고개를 내밀게 될 거라고 주장하였다. 어떤 이들은 뼈가 재구성되어 알이 되며, 그 알은 심해에 있을 그들의 고향으로 안전하게 착지하여 부활한다고 믿었다. 이렇듯, 죽음에 대한 낭만과 새 삶에 대한 희망은 그들에게는 간절한 것들이었다. 그렇기에 카르마는 비밀을 엄수할 필요가 있었다. 그들에게 주어진 막연한 희망과 낭만을 뺏을 수는 없다고, 카르마는 그렇게 생각했을 터다.
별로, 속았다는 사실에 화가 나진 않았다. 애초에 속은 것인지도 불투명했다. 나는 주로 나의 이야기를 했고, 카르마는 주로 별에 대해 이야기 했으니까. 카르마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는 없었다. 그러니, 모르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나는 카르마를 빤히 바라봤다. 조명은 켜지지 않았고 달빛이 환하게 내리비춰 그의 얼굴을 잘 볼 수 있었다. 나는 카르마를 불렀다. 그는 잠시 겁을 먹은 표정이었다가, 힘내서 표정을 풀었다. 나는 그에게 한 걸음 다가가 손을 뻗었다. 그는 내가 자신의 얼굴을 붙잡을 수 있게, 고개를 내려주었다. 나는 그의 양 뺨을 붙잡고 천천히 내려, 그의 이마에 나의 이마를 마주 댄다.
“멋져. 훌륭해.”
나는 말했고, 카르마는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가 끼르륵 웃었다. 이마가 떨어지고, 웃음소리가 멎는다.
잠시간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결국 나는, 배를 추적했던 부분은 지우기로 했다. 그에 따라 배를 타며 구상해둔 영상의 제목도 바꿔야했다. 그거야 뭐 나중에 어떻게든 될 거고. 나는 잠시 느리게 기지개를 켜며 저 멀리 보이는 육지를 바라봤다. 배가 가까워지는 것을 발견한 사람들이 너도나도 몰려나와 배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카르마는 별을 세다가 잠들었다. 밤새 카르마는 자기가 자라오며 어떠한 친절을 받아왔는지,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아서 얼마나 기뻤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결국 아버지에게 별을 연구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고, 학자 선생님과 함께 바다뿐만 아니라 하늘과 별에 대해서도 열심히 연구할 계획이라고 신나게 떠들었다. 나는 그런 그를 축하해주었고, 그가 바깥으로 나올 수 없다는 사실에 안타까워했다. 언젠가는 인어 마을을 둘러싼 경계가 사라지기를 바랐으나, 그게 분명 좋은 일인지에 대해서는 불확실했다. 세상은 부조리로 가득 차있고 차별과 혐오가 넘쳐난다. 소규모의 인원들이 모여 사는 그들의 마을에 비하면 인간들이 사는 세상은 끔찍했으니. 그리고 그들의 문화가 망가지는 것을 지켜보거나 그에 가담하고 싶지도 않았다.
마을에 도착하자 사람들은 내게 결국 배는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어봤다. 그들의 질문에는 호기심과, 초조함과, 기대가 섞여있었다. 카르마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부족장은 걱정스런 눈으로 나를 잠깐 바라봤다. 나는 느리게 웃으며 고개를 젓는다.
“모르겠어요. 배를 놓쳤거든요. 그래서 그냥 바다 위에서 잠시 쉬다가 돌아왔을 뿐이에요.”
마을 사람들은 실망하고 안타까워했으나, 곧 어쩔 수 없다고 웃으며 합창했다. 죽음을 파헤칠 수는 없다네. 바닥없는 물을 길어낼 수 없듯이. 그들은 노래를 부르며 마을로 돌아갔다. 부족장과 카르마는 나에게 감사를 표했다. 오히려 감사를 표하고 싶었던 사람은 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리하여, 전부 끝났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몸을 씻었고, 영상을 편집하기 위해 컴퓨터에 앉았다. 카메라를 꺼내야 하나 싶었으나, 카메라가 담고 있는 것은 그저 배가 사라진 기록뿐이었으므로. 어깨를 으쓱이며 나는 왼쪽 눈을 조심조심 빼낸다. 시신경에 카메라가 내장되어있는 의안을 사용한다는 것을 카르마에게 말했을 때, 그는 거의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눈으로 보는 건 웬만하면 잊지 않는다는 뜻이야.” 내가 말했을 때 카르마는 잠시 아무 말이 없다가, 그럼 부탁이 있다며 나의 눈믈 마주보고 이렇게 말했다.
“나를, 기억해, 줘.”
그리고 나는 죽어서 산에 묻히고 싶다는 것도. 기억해줘. 화면 속의 카르마가 나를 보며 꽤 진지한 투로 말했다. 나는 영상의 그 부분을 잘라 따로 저장해둔 뒤, 다큐멘터리에 실릴 부분은 지워낸다.
영상을 편집하다보니 어느새 또 해가 떴다. 상영회 까지는 며칠 남지 않았고, 상영회에 영상을 제출하기 위해서는 수면 량을 줄일 필요가 있었다. 나는 컴퓨터에 영상을 모두 전송한 의안을 다시 눈에 끼우고는 뺨을 두드려 카메라 기능을 종료하였다. 몇 시간 내내 컴퓨터 앞에 앉아있으니 몸이 쑤셨다, 자리에 일어나려던 나는, 미리 구상해두었던 영상의 제목을 보고는 혀를 쯧, 하고 찬다. 이전의 제목은 지우고 새로운 제목을 적어둔 뒤, 나는 방을 떠났다.
人魚生態日誌.
(※본 주제의 명칭은 ‘About Sahuagin’ 이었으나 사하긴이라는 명칭은 혐오와 차별에 근간을 두고 있으므로 사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학계 용어와 정식 명칭을 사용하여 새 주제를 설정했음을 알린다.)
※
본 글은 가수 'Of Monsters And Men'의 노래인 'Your Bones'로부터 영감을 받았습니다.
막상 써보고 나니 노래 내용과는 전혀 연관이 없네요.. 아무튼 좋은 음악의 주소는 이쪽입니다.
☞ https://youtu.be/wXUloVYbchg
내용을 구상하는 데에 시간이 되게 많이 걸렸는데 구상한 만큼 잘 썼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습니다.
모쪼록 편하게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