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하(無瑕)는 내게 그렇게 불쑥, 자신과 내가 낯선 이가 아니라고 확신하듯이, 주저함도 없거니와 어쩐지 친밀감까지 감도는 어조로 내게 질문을 던져왔다. 그것이 우리의 첫 만남이었다.: “이봐, 여기가 어디야?” “여기요? 강릉이에요.” “강릉 어디?” “강릉시 초당동… 정확한 지번까지는 모르겠어요. 저기 안쪽으로 좀 걷다 보면 고등학교가 나와요, 여긴 버스정류장이고요. 길을 걷다 보면 한국전력 건물, 그리고 아파트단지와 편의점이 나오는데, 조금 걸립니다. 대학교로 가시려면 버스를 타고 가는 게 낫지만 대학교 방향 정류장은 반대편이에요.” 나의 다소 과한 친절에 무하는 입을 다물었기에, 나는 덜컥 내가 쓸데없는 말을 한 것은 아닌가 걱정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무하는 금방 나의 걱정이나 불안 같은 것을 썩 날려버리고 즐거운 기색이 섞인 목소리로 물어온다.: “그러면 오늘은 몇 년 몇 월 며칠이야?” 나는 손목에 찬 시계를 내려다봤다. 어… “이천이십일년 오월 이십칠일이에요.” 내 대꾸에 무하는 엄지와 검지로 그의 매끄러운 턱을 매만진다. 수염의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은 그의 턱을 가만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는 돌연히 나에게서 등을 돌리며 고등학교가 있는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나는 미묘한 불안과 함께, 그가 이 자리를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운 것인지 혹은 신비로운 등장과 마찬가지로 바람처럼 사라지는 그 사람이 남겨놓은 부재가 가만히 앉아 버스를 기다리고 있을 내게 너무나 크고 무료하게 남을 것 같아 두려웠는지 무턱대고 그를 붙잡고 싶었고, 그래서 그렇게 물어보게 되었던 것 같다. 사실은 다른 명료한 질문을 건넬 수 있었을 테다. 약간의 오해를 첨부하여, “실례지만 기억상실이라도 겪고 계신 건가요?”라고 물어볼 수 있었겠지. 그렇지만 나는 그렇게 물었다. 왜 그렇게 물어봤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를 붙잡을 말이 필요했을지도.
“자기가 누군지는 알아요?” 나는 실제로 그렇게 물었다. 무하는 위풍당당 내딛던 걸음을 멈추고 한 박자 느리게 나를 돌아보았다. 다소 무례할 수도 있는 질문에 그는 내게로, 그게 늘 그가 걷는 방식이라는 걸 알려주듯 주저하는 기색 없이 성큼성큼 걸어와 내 옆에 걸터앉았다. 그러면서 그는 말했다.
“나는 6월의 딸기를 찾고 있어.”
“6월의 딸기요?” 내 질문에 그는 끄덕인다. 그리고 그는 확인하듯 다시 내게 물어왔다.
“오늘이 언제라고 그랬더라?”
“오월 이십칠일이요.” 내 대꾸에 무하는 건너편의 정류장을 바라보며 “딱 맞춰 왔군.” 하고 중얼거린다. 나는 이제 확실히 어떤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걸 인정한다. 어리벙벙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는 걸 눈치챘을 때 무하는 나를 한 번 훑어보더니, 내가 입고 있는 옷이 자신의 옷과는 사뭇 다르다는 걸 눈치채고 물어왔다. “학생?”
“아, 뭐, 그렇죠.” 나는 숨기고 싶은 비밀을 들키기라도 한 듯 목소리가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 답답한 교복을―싸구려 재질로 만든 교복 바지는 통풍이 좀처럼 되지 않아 여름이 다가오면 땀으로 찼다. 그러나 하복은 유월에나 개시가 가능한 것이어서, 오월 말은 우리에게 인고의 시간이나 다름없다.―입고 있었으므로 학생이라는 사실쯤은 멀리서 버스를 타고 지나가는 중에 보더라도 알 수 있었을 텐데도 그랬다. 나는 그가 이상한 사람이거나 기억상실자가 아니라는 걸 인정하고 낯섦을 느꼈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가 지닌 어떤 특이한 부분, 그래. 6월의 딸기를 찾고 있다는 그의 진술에 골몰하여 그와 눈을 마주쳤다.
“조퇴했어요. 몸이 좋지 않아서요. 곧 기말고사 기간이라서 집에 가봤자 공부를 해야 하겠지만요. 중간고사 때 조금 실수를 해서 쉬어도 마음이 편하지 않더라고요.”
“그렇구나.” 무하는 나의 횡설수설에 진심으로 공감한다는 듯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는데, 그 크고 과장된 동작은 내게 어떠한 안정감과 그가 단순히 이상한 사람만은 아닐 거라는 확신을 준다. “나는 무하라고 해. 없을 무에 티 하자를 써서. 6월의 딸기를 찾으려고 여기에 왔어.” 둘 사이에 작은 침묵이 깔렸고 무하가 넌지시 물어왔다. “너, 6월의 딸기를 알아?”
“딸기… 라면 보통 겨울에 먹지 않나요?” 사실상 계절은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당장 207번 버스를 타고 교보생명 역에서 내려 건널목 몇 개와 도로를 좀 걷다 보면 영업 중인 설빙이 있을 테고, 거기로 가서 딸기 빙수를 주문하면 오 분 정도의 짧은 기다림 뒤에 잘 잘려서 나온 딸기를 먹을 수 있었다. 그게 아니면 아무 카페에나 들어가서 딸기 음료를 시켜도 된다. 그 즉시 카페의 종업원인지 사장님인지 모를 사람은 냉동고에서 꽝꽝 얼린 딸기를 깨부순 다음 믹서기로 잘 갈아 우리에게 내줄 테니까. 그러나 나는 무하의 질문을 받은 순간에 이미 그가 그런 것 따위를 원하는 게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고, 그래서 나의 대꾸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다른 계절을 지정하는 일.
“딸기는 늦봄에 열매가 맺히는 게 아니었어?” 무하는 놀라서 물었다. 그는 생전 처음 듣는, 동시에 자신이 아는 것을 한 차례 부정해야 할 수밖에 없는, 이를테면 내가 인생을 살며 처음으로 허수의 개념이란 걸 접했을 때 나도 모르게 지었을지 모르는 표정을 지은 채 날 바라봤다. 놀라움과 난처함이 뒤섞인 눈동자를 마주 보고 있자니 조금 당황스러웠다.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잔뜩 쌓인 카카오톡 메시지를 모두 지워버린 다음 네이버 어플을 켰다. 딸기에 대해 검색하자 최상단에는 딸기를 판매하는 쇼핑몰 사이트가 잔뜩 올라와 스크롤을 조금 내린 다음 지식 백과의 딸기 항목에 들어갔다. “아무런 시설이 없는 곳에서 제대로 익으려면 5월 이후가 된다.” 나는 지식백과에 적힌 문장을 조용히 읽었다. 내 공허한 울림이 무하에겐 길을 밝히는 등불처럼 다가온 것마냥, 대화하지 않던 동안 약간 경직되어있던 무하의 표정이 환하게 피어올랐다. “오월 이십칠일이면 딸기를 수확하고도 남았을 거야.” 무하는 들뜬 기색을 감추지 않고 내게 말을 붙여왔다. 하지만 백과사전에는 ‘아무런 시설이 없는 곳’이라고 정확하게 짚고 있었고, 나 또한 그렇게 짚어줄 수밖에 없었다. 요즘 대부분의 딸기는 하우스에서 재배된다고, 노지재배를 하는 딸기 같은 건 찾아볼 수 없다고, 그렇기엔 이 땅이 너무나도 덥다고……. “그러면 고랭지는?” 내 핸드폰을 기어이 가져가 사전을 정독한 무하가 물었다. “고랭지는 어디로 가야 찾을 수 있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대관령이 있을 방향을 바라본다. 영동과 영서를 가르는 기준점은 어디에서 둘러보아도 건물에 가려지는 것만 아니라면 눈으로 찾을 수 있었고, 날이 좋을 때는 그 위에 설치되어있는 흰 프로펠러들도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쪽을 가리켰고, 무하는 높다란 고원을 게슴츠레 바라보다가 물었다. “저기로 가면 딸기가 있을까?” 무하가 물어왔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마 없을 거예요.” 무하가 분명 실망하고 있을 거라 예상하여 나는 그의 얼굴을 부러 보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강원도 고랭지는 배추 농사를 하거든요. 딸기가 자랄 자리는 없어요.” 어쩌면 고랭지라 하더라도 딸기가 무사히 자라기엔 너무 더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배추는 잘 자랄까? 나는 막연히 궁금해졌다. 호기심을 떨치기 위해 나는 무하를 바라본다. 고랭지의 배추나, 이제는 존재하는지조차 모호할 정도로 존재감이 흐릿한 여름 딸기처럼 신비로운 그를.
“아깝게 됐네.” 그는 정말 아쉽게 놓친 듯, 안타까워하는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무하의 수많은 표정을 모두 보아버린 것 같아 나는 덜컥 겁이 났다. “저기, 딸기가 먹고 싶은 거라면 곧 오는 버스가 있는데 그걸 타고 시내에 가서 카페에 들어가면 돼요. 생딸기 음료도 팔고 있으니까 어렵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버스를 타게 되면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으리라. 나는 이걸 더 기대했다. 집으로 혼자 돌아가는 길은 너무 멀고, 이런 대낮에 교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학생은 좋든 싫든, 그리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주변의 바쁜 어른들의 시선을 받기 마련이었기에. 나는 차라리 무하가 함께하여 나에게로 향할 시선을 분산시켜주기를 바랐던 것 같다. 그러나 무하는 고개를 젓는다. “아니, 다른 곳으로 가봐야겠어.” 무하는 연극의 주인공이 독백하는 것처럼 진지하고 다소 극적인 투로 말했다. “다른 곳… 어디로 간단 말씀이세요?” 내가 물었을 때, 무하는 다만 웃을 뿐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는다.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전화번호나, 이메일이나. 뭐 그런 거라도. 분명 받고 나서 집으로 돌아가면 후회할 수도 있었겠지만, 무하와 다시 한번은 만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남겨두고 싶었다.
그러나 무하는, 고개를 젓는다. 그는 내게로 손을 흔들며 인사한다. 마침 저 멀리서 버스가 오고 있다.
“날 보고 싶다면 너도 6월의 딸기를 찾아. 그리고 거기서 만나는 거야.” 무하의 목소리만 자리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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