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nicRoom (118)

 이 카페는 소문으로 가득 차 있다. 강아지 귀를 단 아르바이트생이라던가, 멀쩡하게 생긴 바리스타가 만들어낸 커피의 맛이 인스턴트 커피의 그것과도 같다던가. 그것이 아니면 매니저가 귀는 물론이고 꼬리까지 달고 있다던가, 주방에는 이제 겨우 중학생으로 보이는 뾰족귀 여자아이가 있다던가, 전혀 닮지 않은 웨이터와 웨이트리스가 쌍둥이라던가, 바에서 일하는 바텐더의 눈이 붉은 색이라던가, 그리고 그 외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수많은 소문들. 이 마을에, 아니 이 나라에 도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들을 수 없던 수많은 기이한 소문들이 자동으로 날 이 카페로 이끌었는지도 모른다. 전에 살던 나라에서 도무지 살 수 없어 도망쳐 불법체류한 나에게 이런 소문을 즐기는 것도 사치겠지만, 나는 아무렴 어때. 하는 마음으로 카페에 들어왔다. 순전히 소문이 진실인지 아닌지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기에.

 일부러 조금 신경 쓰고 나와 앤티크풍의 거리를 걷는다. 이 마을은 이런 느낌이구나. 왠지 포근한 기분이다. 어느 정도 걷다 보니 금색 손잡이의 나무문이 보였는데, 나는 그 문을 보자마자 여기가 그 카페구나! 하고 나도 모르게 손뼉을 짝 쳤다. 몇 초간 경직된 채로 서 있다가 주변에 누가 있나 두리번 거린 후 나는 급하게 문을 열었다. 훈훈한 공기와 함께 흘러나오는 향긋한 커피내음. 작고 귀엽게 울려 퍼지는 종소리의 인도에 따라 한걸음 내딛으니.

 늑대인간이 있다.

 한순간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사실 이 카페의 여러 소문을 밝혀내기 위해서는 수많은 어려움을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한순간 나도 모르게 제자리에 주저앉아버려 늑대인간을 올려다보고만 있었다. 늑대인간은 날 빤히 내려다보고는 말했다.

 "괜찮으세요?"

 그래도 사람 말은 하는구나. 감탄하던 나는 정신을 차리고 부랴부랴 일어나 고개를 숙이고 사과했다. 늑대인간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날 테이블로 안내했다. 해치지는 않는구나. 사실 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 그 늑대인간을 보고 주저앉았을때는 잡아먹히는 전개까지 상상했더랬다. 아무튼, 살았으니까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첫 번째 소문은 확인 완료. 작은 노트에 메모를 하며 웨이터를 기다렸다. 웨이터와 웨이트리스의 소문은 쌍둥이. 라는 거였나? 상당히 평범하네.

 "에? 뭐가 평범하단거야, 손님?"
 "히이이이익!"

 사실, 이런 말 까지는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심장마비 걸릴 뻔 했다. 갑작스레 불쑥 튀어나온 웨이터 때문에 이상한 소리까지 내고. 내가 이 카페에 잘 온 건가 하는 의문이 드는 시간이었다. 웨이터도 내 반응에 상당히 놀란 눈치였다. 놀란 표정이 굉장하다. 서로 그렇게 놀라고 나서 웨이터는 쪽팔린건지 화난 것인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 뭐야, 귀신봤나. 왜 그렇게 놀래요. 나도 놀랐네. 아무튼 뭘로 드릴까, 손님?"

 늑대인간이라면 봤는데.

 "그러니까, 그.. 커피 하나하고...또..."
 "뭐야, 고민하고 있어? 그럼 내가 추천해줄까? 이거. 이거 어때? 이거 먹으면 오늘 운수대통! 같은 느낌이 드는데. 손님, 콜?"

 무슨 웨이터 말투가 이래. 머리가 아파진 나는 힘없이 "콜" 이라고 답했다.

 "좋아, 꽤 쿨한 손님이시네~ 그럼~ 커피하고 이걸로. 야, 이스티! 진혁이형! 주문이요~"
 "저, 저기.."

 나는 가려던 웨이터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일단 이름이라도 알아놓아야지. 그게 소문을 더 자세히 알아보는 데에 도움이 될 지도 모른다. 웨이터는 옷자락을 잡자 조금 놀란 눈치였는데, 웨이터의 표정을 보자 "이 웨이터는 절대 도박 같은 건 하면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네? 무슨 일이쇼."
 "저기.. 그 웨이터 이름이 뭐에요?"

 잠깐 정적.

 "아니 그게 다른 의도가 있는 건 아니에요. 제가 무슨 대뜸 전화한 다음에 '거 전화받는 사람 이름이 뭐요?' 하고 묻는 도지사도 아니고. 그냥 그 신기한 소문이 있어서 확인차 그런거거든요. 사실 아까 한 말은 비밀이지만 못 들은 걸로 쳐주세요. 아무튼 거... 웨이터 이름이 뭐에요?"
 "이 손님 이상해... 경찰이에요?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나."
 "아니 경찰 아니거든요! 무슨 제가 잠복근무라도 하는 줄 아세요? 그냥 궁금한 거에요."
 "아, 아니면 나한테 반한 거에요? 아~ 이거 곤란한데. ..진짜요? 진짜 반한 거에요? 아니 저기 나는 처음 보는 사람하고 연애는.."

 뭐래

 "늘빈아, 손님한테 그렇게 말하면 못써."

 그 말 한마디가 마치 지옥을 헤매던 나를 구하는 천사의 목소리 같았다. 나는 감동이 가득 찬 눈으로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봤다. 천사구나. 여기 천사가 있다. 천사는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손님, 늘빈이가 무례하게 굴어서 기분이 나쁘지는 않으셨어요? 제가 대신 사과할게요."
 "아니 누나 그런 거 아닌데.."

 둘이 남매인가. 나는 멍하니 있다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니 그런 거 아니에요. 오히려 초면에 이름물어본 제 잘못이죠. 웨이터분은 잘못이 없어요."
 "거봐. 난 잘못 없다니까."
 "그래도 이름 물어본다고 이상한 소리까지 하는 건 너무했어. 늘빈이도 사과해."

 천사가 말하자 웨이터, 늘빈은 끄응.. 하는 소리를 내다가 어정쩡하게 고개를 숙이며 "죄송합니다. 손님." 하며 사과했다. 그 모습을 본 천사는 만족한 듯이 웃었다. 정말 천사구나.

 "저기 손님, 이름을 물어보신 이유를 알아도 될까요?"
 "아, 그게.. 이상한 소문이 있어서요."

 이상한 소문. 이라는 말에 천사는 고개를 갸웃하고, 늘빈은 잠시 생각하다가 뭔가 알았다는 듯이 요란을 떨었다.

 "알았어, 그 소문. 이 하늘빈님의 추천메뉴가 짱이라는 거지?"
 "그건 틀렸어요."

 단칼에 아니라고 말한 나는 잠시 뜸을 들인 뒤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웨이터하고 웨이트리스가 전혀 닮지 않았는데 쌍둥이라는 소문이 있어서요. 그런데 여기 와서 보니까 그리 딴판인 것도 아니네요. 성격은 딴판이지만."
 "그거 칭찬 아니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정치인이나 할 만한 대답으로 늘빈의 말을 무시했다. 늘빈은 날 째려보더니 한숨을 쉬고 어디론가 가버렸고, 천사는 빙긋 웃은 채로 입을 열었다.

 "하하, 쌍둥이 맞아요. 이란성이어서 닮지 않은 것 뿐이죠."
 "그렇구나.. 정말 감사합니다. 아, 그보다 웨이트리스님은 이름이 뭐에요?"
 "저요? 제 이름은 하늘봄이에요. 매니저님은 저스티니안 덴버. 풀네임을 싫어하시니까 '티니'라고 부르는 걸 추천할게요. 그리고 바리스타씨는 하진혁. 파티쉐 이름은 이스티에요. 바텐더씨 이름은 에단 레이먼드 랍니다. 그리고, 아르바이트생은 한부리에요."
 "앗, 다른 분들 이름까지.. 정말 감사합니다!"

 천사, 아니 늘봄은 밝게 웃고 답했다.

 "아니에요. 제 일인걸요. 필요한 게 있으면 불러주세요."

*

 생각보다 양이 적은 음식과 예의 그 인스턴트맛 커피는 몇 분 지나지 않아 나왔는데, 늘빈이 그것을 들고 올 때는 볼이 양껏 부풀려진 상태였다. 나는 설마 했지만 그렇지 않으리라 속으로 믿으며 여긴 양이 적구나, 하는 불평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저기 주방에서 "손님거 먹지 말라고 몇 번을 말해. 바보야." 하는 말을 듣자 나도 모르는 분노가 솟구쳤다. 하늘빈, 밤 길 조심해라. 얼굴 봐뒀어.

 양이 적은 음식은 일단 뒷전이었다. 이 커피가 인스턴트 맛이 나는 지 확인해봐야했다. 연기가 모락모락 나는 컵을 들고 입으로 가져다 댄다. 아니, 잠깐. 이 커피. 담배냄새나.

 "저..저기요... 이 커피, 담배냄새 나는..데요.."

 울먹거리면서 늘봄에게 말하자 늘봄은 난처한 표정이 되어 사과를 했고, 어느새 소파에 누워있던 늑대인간, 티니는 자리에서 일어나 바텐더, 진혁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또다시, 정적.

 어느새 시니컬한 표정의 여자아이가 벽에 기대서 "그러니까 담배 피고 나서 손은 깨끗이 씻으라고 몇 번을 말 했는데." 라고 중얼거렸고 늘빈은 "진혁이형이 또 얻어맞는구나." 라면서 우물거리고 있었고, 늘봄은 연신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라며 사과하고 있었다.
 아, 소문이고 뭐고 집에 가고 싶다. 아, 나 집 없지.

 인상이 더러운 중학생정도의 키의 남자가 터덜거리며 나에게 걸어와 삐딱하게 고개를 숙이고 억지로 하는 듯이 "죄송합니다." 라고 들릴 듯 말듯 하게 사과를 하고 급하게 자기가 있던 곳으로 되돌아갔다. 저 사람이 바리스타구나. 쫓아가서 한 대 때려주고 싶었지만 참았다. 시간이 5시가 되는 알림이 울리자 늘봄이 걸어와서 "죄송합니다. 오늘 영업은 끝났어요. 7시부터 바가 열리니 그때 다시 와주실래요?" 라고 말했다. 두 시간 동안 어디서 뭘 한다고. 나는 얼굴에 철판을 깔고 말했다.

 "두 시간 동안 할 것도 없는데 그냥 여기 있으면 안 될까요?"
 "아니 그렇지만 그게, 카페 방침이라서요.."
 "날 계속 보고 싶어서 그러는 거에요? 미안한데 난 댁한테 관심 없으니까 미련 버리고 가세요. 훠이훠이."

 어느새 늘빈이 다가와서 말했다. 짜증이 나버린 나는

 "입 닥쳐 삼엽충."

 하고 대답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없었다.
 빈봄 쌍둥이가 날 잡고 쫓아내느라 정신없는 사이에 무슨 소란이냐며 주방장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주방에서 나왔으니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는 주방장 이스티가 걸어왔다. 좀 조용히좀 하라며 하진혁도 나왔으나 티니는 여전히 소파에 누워있었다. 엄청나게 태평하구나, 귀찮아하는 건가? 아무튼 그 소란에 처음 보는 남자가 걸어나왔다. 바텐더복을 입은 무표정의 보라색 8대 2가르마가 어울리는 것 같지 않으면서 어울리는, 붉은 눈의 남자가. 붉은 눈?

 "찾았다! 적안!"

 나도 모르게 붉은 눈의 남자를 삿대질하며 소리치자 한순간 카페가 싸늘해졌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 그때 종소리가 들리며 한 남자가 들어왔다. 갈색 머리에, 강아지의 귀를 달고 있는...

 "또 찾았다! 개!"

 또다시 삿대질하며 소리쳐버렸다. 하진혁은 한숨을 쉬다가 개에게 말했다.

 "바둑아, 도망 못 치게 문 잠가."
 "아, 진혁아.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요. 바둑이 아니라 부리라니까요. 아무튼, 문 잡글게요~ 그보다 저분은 누구예요? 새 직원?"
 "그런 거 아니에요, 형! 이 손님 이상해."

 내가 뭘 했다고. 억울해진 나는 뭐라 하려 했으나 한순간 살벌해진 분위기에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붉은 눈의 남자는 뚜벅뚜벅 걸어와 말했다.

 "어떻게 오셨어요?"

 큰 키에, 붉은 눈에. 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 쫄았다. 옆에서 늘빈이 "뭐하는 사람이냐고 물어봐요!" 하고 소리치자 부리가 말했다.

 "어라? 늘빈아, 저 손님 사람 아닌데요? 사람 냄새가 안 나요."
 "뭐라고?!"
 "마족같은데? 저거."

 어느새 일어난 티니가 기지개를 켜며 덧붙였다. 이스티가 "그러고 보니 귀가 뾰족하네." 라며 말했고, 다들 오오, 그렇구나. 하는 반응을 보였다. 에단은 잠시 생각하다가 티니에게 물었다.

 "저스티, 어쩔거야?"

 저스티는 생각하는 틈도 없이 이어 말했다.

 "저쪽 민폐도 있고, 어차피 뒷사정도 있어 보이고, 마족이면 일도 잘 할 것 같으니까."

 말하던 도중, 티니는 부리에게 뭔가 손짓을 했는데, 어느새 가져왔는지 부리는 저스티에게 종이를 건넸다. 종이를 건네받은 저스티는 주머니에서 펜을 꺼내 나에게 들이밀며 명령조로 얘기했다.

 "계약서다. 관등성명 적고, 사인해. 그보다 이름이 뭐냐?"

 이름. 나한테 이름이 있던가? 러시아에서 숨어 살다가 이 나라로 몰래 도망쳤는데, 이름... 난 잠시 눈을 굴리다가 중얼거렸다.

 "김명희."
 "오케이, 잘 부탁해. 명희 씨."

*

 이 카페는 소문이 있는데, 그 많은 소문은 모두 사실이며, 알려 하지 않는 것이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래도. 나쁘지는 않은 직원들이며 카페라는 것 또한 사실이다. 혹시나 비인간 중에서 세상에 인정받지 못하고 살아간다면, 이 카페로 오길 바란다. 당신은, 꼭 특별한 혜택을 받을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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