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빈은 카페에서 나오고 나서부터 계속 불만이 있다는 표정으로 길을 걸었는데 그것은 옆에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걷던 명희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왜 이 사람과 같이 동행해야하는가, 하고 서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똑같았다. 그러나 어쩔 수는 없었다. 제비뽑기를 제안한 것은 늘빈이었고 찬성한 사람은 명희였으니까. 서로 같이 행동하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것이리라. 늘빈은 카페에서 나오고 나서부터 계속 불만이 있다는 표정으로 길을 걸었는데 그것은 옆에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걷던 명희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왜 이 사람과 같이 동행해야하는가, 하고 서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똑같았다. 그러나 어쩔 수는 없었다. 제비뽑기를 제안한 것은 늘빈이었고 찬성한 사람은 명희였으니까. 서로 같이 행동하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것이리라.
여기저기에서 괴인과 괴수가 출몰하기에 그들을 처리해 달라는 임무가 도착했다. 마침 5개였기에 임무 하나당 두 명씩 팀을 짜서 가면 될 것이라는 결론이 나오는 데까지는 완벽했다. 늘빈이 제비뽑기로 정하자고 제안하지만 않았으면 서로 원하는 팀으로 갈 수 있었을 터였다. 결과적으로 하늘빈, 김명희가 A팀, 저스티, 키리에가 B팀, 하진혁, 이스티가 C팀, 첸, 한부리가 D팀, 에단, 하늘봄이 E팀으로 임무를 하러 가게 되었다. 서로 다치지 말고 돌아오자고 약속한 뒤 웃으며 떠났...는데 늘빈은 웃을 수 없었다. 저런 스토커 여자하고 같이 가다니. 물론 기분이 나쁜 것은 명희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래서, 우리가 뭘 잡으러 가야 한다고?"
싫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늘빈이 말했다.
"인어요. 아까 얘기할 때 뭐했어요? 잠시 딴 나라에 다녀왔어요?" 명희는 답하고서는 무표정이 되어 앞만 바라보며 걷고 있었다. 잠시간의 뜸을 들인 후에, 명희는 다시 입을 열었다. "사실 인어가 있다는 게 믿기진 않네요. 아무리 소문을 좋아하는 저라지만 헛소문일 것 같아요."
"헛소문일 리가 없잖아. 헛소문일 근거는?"
"그야, 인어는 멸종당해도 아무런 이상한 일이 없으니까요."
명희는 담담하게 말했다. 늘빈은 담담하게 멸종이라는 말을 하는 명희가 조금 이상하였으나, 원래 저런 성격이겠거니 하면서 다시 걸었다. 묻지 않았는데도 명희는 인어에 대하여 설명했다.
"인어라는 종족은 관계를 통해 아이를 배는 종족이 아니에요, 이런 표현이 맞을 지는 모르겠지만 인어들은 창조된다고 할 수 있겠네요. 물 속 깊은 곳에 갑자기 짠 하고 나타나는 거라고 볼 수 있어요."
늘빈은 제대로 이해할 수는 없었으나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그러니 자연스레 개체는 적을 수밖에 없죠. 개체가 적어도 괜찮은 이유는, 불로불사의 종족이기 때문이에요. 인어는 물 밖으로 나가도 다시 물에만 들어오면 건강해지니까요, 물속에 있으면 죽지도 않죠. 이게 개체가 적어도 그들만의 사회를 유지하며 살 수 있는 이유에요."
"그럼 왜 멸종돼도 이상하지 않은 건데? 바다 밑에서 살고만 있으면 괜찮잖아?"
"자기들이야 그러면 만사오케이죠. 그런데 사람이 가만 놔두겠어요?"
늘빈은 잠시 말을 잃었다. 명희는 한 걸음 한 걸음 걸으며 계속 이야기했다.
"인어의 피를 마시고 고기를 먹으면 불로불사의 힘을 얻을 수 있어요. 생로병사의 진리를 무시하는 인간이 되는 거죠. 그런 소문이 돌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인어를 닥치는 대로 잡아먹었다고 해요. 그래서 불로불사를 얻었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요. 이다지도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입니다~ 하는 얘기였어요. 어때요, 이기적인 동물 씨?"
"누가 이기적인 동물이야! ..그나저나 확실히 너무하긴 하네. 불로불사가 벼슬인가?"
"벼슬이죠. 왕이 불로불사를 얻으면 평생 나라를 유지할 수 있고, 난봉꾼이 불로불사를 얻으면 세계의 모든 여자를 취할 수 있으니까요. 물론 앞의 예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잖아요?"
또다시 늘빈은 말을 잃었다. 정말이지 할 말을 없애는 데에는 달인이다. 한숨을 쉬며 말없이 계속 걷는데 눈 앞에 큰 웅덩이가 보였다. 전까지는 없었던 웅덩이인데. 늘빈은 눈이 동그래져 웅덩이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명희는 손뼉을 짝 쳤다. "찾았네요. 인어"
"이게 인어야?"
"이 안에 있겠죠? 사실 조금 두근거려요. 인어는 본 적이 없거든요."
"그렇긴 한데... 아, 근데 나도 싸워야하냐? 난 일반인인걸!"
명희는 늘빈을 빤히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만약 당신 누나였으면 발 벗고 나섰겠죠, 할 필요 없다고 말려도 하겠다고 했을 거예요. 쌍둥이 맞아요? 좀 누나 좀 닮아봐요."
"닮았잖아? 생김새."
늘빈은 조금 화난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너, 쌍둥이라고 다 똑같은 건 아니거든? 쌍둥이는 둘이서 하나가 아니라는 말씀이야. 알았어?"
"...네. 알았어요. 이번은 사과할게요. 죄송합니다."
"뭐, 알았다면..."
"그보다 너, 너, 하는 건 조금 그렇네요. 앞으로는 이름으로 불러주세요."
"...에? 어, 어... 너도 내 이름으로 불러. 삼엽충이라던가 이상한 거 말고."
"네, 그러겠어요. 화해인가요?"
"어... 응, 그렇네."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때 마침 웅덩이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녹색의 긴 머리가 내려와 가슴을 덮고 있었으며 얼굴은 아름다웠다. 몸 또한 완벽하다고도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한순간 늘빈은 놀람에 얼굴이 붉어졌으나 이내 평정심을 되찾았다. 상반신은 아름다운 여자였으나 허리 아래부터는 초록색의 비늘로 덮인 꼬리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지느러미는 없었다. 뱀을 연상시키는 듯한 꼬리, 늘빈은 이상한 것을 느껴 말했다.
"인어는 반은 사람, 반은 물고기 아니야? 저건.. 뱀 같은데?"
"돌연변이.. 겠네요."
명희는 담담하게 말했다.
"돌연변이가 생길 수 있어?"
"그야 물론이죠, 지점토로 무언가를 만들 때도 뜻대로 나오지 않을 때가 있잖아요? 그거하고 같은 거예요. 좀 위험할 것 같으니 물러나세요."
그렇게 말하고는 명희는 조용히 입만 움직여 먹색의 채찍을 만들어냈다. 시험 삼아 휘둘러 바닥을 치니 큰 소리가 들렸다. 명희는 만족스럽다는 듯 웃으며 인어를 바라봤다.
"상대가 남자였으면 가면도 쓰고 촛불도 들어줬을 텐데, 아쉽네요. 자, 그럼 화끈하게 놀아볼까요?"
그렇게 말하고는 입을 쩍 벌리며 달려드는 인어의 뺨에 채찍질을 가했다. 둥그런 원을 그리며 휘둘러지는 채찍은 경쾌한 소리를 내며 인어의 몸 구석구석을 공격했다. 그때마다 인어는 비명인지 포효인지 모를 소리를 지르고는 다시 명희에게 달려들었다. 작은 마법을 이용하여 공중에 뜬 명희는 채찍을 휘둘러 인어의 등을 가격했는데, 맞는 소리가 무척이나 경쾌해 기분이 좋아진 명희는 "찰지네요!"라고 말한 뒤 땅에 착지하여 다시 채찍을 휘두른다. 이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늘빈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표정이었으나 속으로는 "다음부턴 까불지 말아야겠다."하는 생각이 고개를 쭈삣쭈삣 들고 있었다. 무차별로 공격을 가하던 명희는 조금 피곤한지 채찍을 휘두르는 속도가 확실히 줄어들었다. 공격의 기회임을 눈치챈 인어는 물 밖으로 나와 명희에게 빠르게 다가간다.
"김명희!"
위험을 직감한 늘빈은 저도 모르게 명희를 부른다. 명희는 늘빈을 뒤돌아보고는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이 달려 늘빈의 뒤로 가 팔로 늘빈의 목을 감싼다. 인어가 늘빈과 명희를 보자 명희가 말한다.
"어때요, 이 남자. 맛있어 보이죠?"
"야, 너 지금 무슨... 끼야아아아아아악!!"
그 자리에서 뛰어올라 늘빈에게 돌진하는 인어를 보고 명희는 말했다.
"야생의 동물을 길들이는 최적의 방법은, 채찍과 감금이에요."
그 순간, 인어의 주위에는 검은 쇠창살이 생겼으며 이내 인어를 가둔다.
*
카페에 돌아온 늘빈은 늘봄에게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미끼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또 하고, 또 하고 또 했는데 명희는 작게 사과만 했을 뿐이었다. 화가 난 늘빈은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냐며 화를 버럭 냈으나 명희는 당당하게 전 마족인데요. 라는 한마디로 늘빈의 말을 막았다. 화낼 힘도 없어진 늘빈은 그대로 축 쳐졌는데 명희가 늘빈의 앞에 우유를 두고 정말 미안했다는 말을 한 뒤 자신의 방으로 걸어갔다. "그래도, 하늘빈 당신이 먹음직스러운 건 사실이니까요." 라는 농담을 덧붙이며. 늘빈은 명희가 준 우유를 빤히 바라보다가 우유를 마셨다. 조금은 피곤했지만 좋은 하루였던 것 같다고 그는 생각한다.
지네가 괴이한 소리를 내며 대가리를 앞으로 민다. 저스티는 그 자리를 박차고 뛰어올라 지네의 머리를 내려 찍는다. 머리가 밟힌 지네는 다리를 꿈틀거리며 날카로운 발톱으로 저스티의 다리를 긁기 시작한다. 바지가 찢어지며 긁힌 자국이 새겨진다. 지네의 머리를 다시 한번 밟고 다시 뛰어올라 지네와 거리를 유지하는 저스티와 선수교체를 하듯이 달려드는 키리에가 날카로운 손톱으로 지네의 다리들을 절단한다. 저스티는 괜찮다는 표정이지만 다리가 욱신거리기 시작하여 조금 찡그린다. 지네가 비명을 지르고 쓰러진다. 끝인가? 하였으나 지네의 몸에서 보라색의 연기가 뿜어져나와 키리에와 저스티를 가두었으며 지네의 몸에 난 구멍이라는 구멍에서 작은 지네들이 튀어나왔으므로 심각하게 귀찮게 되어버린 상황이었다. 저스티는 완전히 보랏빛으로 물들어버린 앞을 바라보며 한숨을 쉰다.
*
임무를 받고 늘빈의 제안으로 제비뽑기를 하여 키리에와 한 조가 되어 저스티는 내심 기뻤다. 저렇게 강한 신입사원이 알아서 다 해줄 것이리라. 하는 마음에 팝콘을 챙겨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했으나 생각으로 끝났다. 아무튼, 임무를 나간 저스티와 키리에는 거대지네를 잡아야 한다는 말에 조금 당황했다. 둘 다 지네가 어떤 동물인지 자세하게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문제 될 것은 없다고 생각하였으나, 상당히 지네는 귀찮은 적이었다. 긴 몸은 딱딱한 껍데기로 덮어져 있어 때려도 때린 만큼의 힘이 들어가지 않았으며 때리는 쪽도 피해가 컸다. 움직임은 얼마나 빠른지, 초반 5분은 피하는 데에도 고생이 심했다.
지네의 공격 패턴을 파악하여 공격을 시작한 지 45분 정도 지나고 나서 지네가 쓰러졌고, 그와 함께 보라색의 연기도 뿜어져 나왔다. 시야가 가린 것은 물론이거니와 독 안개를 연상시켜 기분도 나빴다. 바람이라도 불었으면 좋으련만, 날씨는 바람 한 점 없었다. 이런 곳에서 혼자 있는 것은 위험하니 키리에를 찾기로 하였다. 냄새를 맡으면 쉬울 텐데, 이 연기 때문에 그것도 무리였다. 또각또각 걸으며 키리에를 불렀으나 아무런 대답이 없다. 얘가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하였으나 키리에한테 무슨 짓을 하려는 이가 있으면 그 사람이 더 불쌍한 상황을 만나게 될 것이 뻔했다.
몇 시간을 걸은 것 같은데도 키리에는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피곤이 쌓인 저스티는 돌아가고 싶었으나 돌아가는 길 또한 찾을 수 없었고 소중한 직원을 두고 갈 수도 없는 일이었다. 다음부턴 지네라던가, 싸워본 적이 없는 괴수나 괴인을 처리하는 임무가 있으면 절대 받지 않으리라고 다짐한 저스티는 기지개를 켜다가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리는 것을 알아채고 핸드폰을 든다. 연락인 하늘빈, 얘가 무슨 일인가 하여 통화 버튼을 누른다.
"어, 뭐냐."
"명희에요. 다들 왔는데 왜 안 오고 있어요?"
"아 그래 너 핸드폰 없었구나. 그보다 상황이 좀 안 좋아졌는데, 사방이 보라색이야."
한동안 답이 없었다. 전화가 끊긴 건가? 하였으나 그것도 아니었다. 몇 분 뒤 다시 명희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네였죠? 지금 그 자리에서 최대한 위로 높이 뛸 수 있어요?"
"높이? 평소보단 아니지만 할 수 있겠는데..."
"그럼, 뛰어요."
저스티는 뛰기 싫었지만 하는 수 없이 그 자리를 박차고 뛰어올랐다. 간신히 보라색 연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며 지네가 어디에 있는지도 알아낼 수 있었다. 잘라 말하자면 지네는 키리에를 물고 산으로 기어가는 중이었다. 전화 너머에선 "절대로 지네가 산에 들어가게 하면 안 돼요. 누가 잡혀있다면 더더욱. 산으로 들어가면 영락없이 지네의 신부가 되어버리거든요. 그 연기에서 빠져나가는 길은 지금 찾도록 해요. 건투를 빌어요." 더 대답을 하기 전에 전화가 끊겼다. 저스티는 아래를 나려다보고 나가는 길을 기억해 낸 뒤 다시 착지를 하여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조금만 뛰면 지네를 잡는 것은 무리가 아니었다.
*
지네에게 잡힌 키리에는 일이 잘 안 풀린다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지금이라도 뭔가 해야 하긴 할 텐데 물린 상황에서는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다. 지네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산으로 달려갔는데 왠지 산으로 들어가면 안 될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산의 입구가 보였다. 이럴 때 자기가 어서 와줘야 할 텐데. 라고 중얼거리던 키리에는 뒤에서 달려오던 저스티를 발견하곤 안심의 미소를 그린다. 저스티는 지네의 꼬리를 밟아 지네의 입을 자동으로 벌어지게 하였으며 그와 함께 키리에도 자유로워져 지네를 공격할 수가 있었다. 지네는 천천히 뒤로 움직이다가 어느새 산에 들어가게 되었다. 망했다. 저스티는 이제 무슨 일이 생길지 감을 잡지 못하였는데, 눈앞에는 전혀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괴수 그 자체였던 지네의 몸이 점점 작아져 사람의 팔과 다리가 등장했다. 이윽고 머리는 희고 반짝이며, 눈은 푸른색으로 빛나고 한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미남자가 되었다. 한순간 멍해진 저스티와 키리에를 보며, 남자는 입을 열었다.
"제가 잠시 실례를 끼쳤습니다만, 그쪽의 금발 아가씨를 제 신부로 취하려고 한 것은 제 고의가 아니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 죄송합니다."
"아니, 난 괜찮았어. 조금 불편하긴 했지만, 자기. 너무 미안해하지 마."
친절하게 웃는 키리에를 보며 남자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앞으로는 자신이 산 밖으로 나올 일도 없다고 덧붙였다. 저스티는 카페로 돌아가기 전 지네에게 넌 뭐냐고 물었다. 지네는,
"제 이름은 오공입니다. 이 산을 지키는 역할을 하고 있죠. 그런데 요 근래 머리가 아픈 일이 많아져 산 밖으로 나가 사람들을 괴롭히곤 했습니다.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스트레스가 아닐까 싶네요. 한번 거창하게 스트레스를 풀었으니 다신 이런 일이 없을 겁니다. 죄송하며 감사합니다. 아가씨들."
*
오공은 지네 오(蜈)에 지네 공(蚣)자를 쓴다는 사실을 부리에게서 들은 둘은 원숭이가 아니라 그런 뜻이었다는 데에 한번 놀라고 부리가 그런 한자를 알고 있었다는 데에 또 놀랐다. 에단이 오공이라는 지네는 괴물이라고 책에서 읽었다는 말도 하였고, 늘봄도 책에서 지네괴물에 관한 이야기를 읽었다고 했다. 마지막에 명희가 지네괴물과 오공은 확실히 다른 종류이며, 둘 다 신부를 취하려 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나 지네괴물은 신부를 잡아먹는 데에 쓰고, 오공은 신부를 산의 수호신으로 만들어 평생을 함께한다는 이야기를 하여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 "나 그냥 산에 들어가서 수호신 할 걸 그랬나 봐." 하며 농담을 하는 키리에의 말에 닥터가 기겁을 하여 카페의 분위기는 원래대로 돌아왔다. 저스티는 이스티가 꼬리를 빗겨주고 있을 때 하품을 하며 오늘은 일찍 자야겠다는 생각과, 이렇게 특이한 일도 가끔은 좋겠다고 생각하며 하루를 마친다.
붉은빛의 세상이었다. 아무것도 없으며 생길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사방이 붉어 기분이 나빴으며 이것이 꿈이라면 빨리 깨어나길 바라며 길을 걷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걸으니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세상을 덮었다. 나는 무서웠으나 조금 더 가보기로 했다. 계속 걷다 보니 비웃는 소리와 야유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화가 나 뛰어가기 시작했다. 뛰다 보니 무언가 불타는 소리, 누군가 우는 소리, 채찍이 휘둘러지는 소리, 가위가 무언가를 자르는 소리, 사람들이 손가락질하고 야유하는 모습, 누군가 급하게 도망가는 모습, 그리고 화가 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죽이는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막다른 골목에 도착했는데, 익숙한 누군가가 부르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그곳에는
*
이상하게도 악몽을 꾼 진혁은 오늘따라 몸이 무거웠다. 거기에다 이스티와 함께 임무에 나가야 한다니, 오늘은 물고기자리가 오하아사 1위인가 싶은 날이었다. 이스티는 먼저 준비를 끝내고 카페 밖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가 나오자마자 왜 늦었느냐며 묻기 시작했다. 대답할 힘도 없던 진혁은 미안하다고 대충 말한뒤 먼저 걸어갔다. 이스티는 고개를 갸웃 하고 그를 따라간다. 진혁은 하품을 쩌억 한 뒤 천천히 길을 걸었고 이스티는 그의 뒤를 따라가며 입을 열었다.
"아저씨, 우리는 오우거를 잡아야한대."
"오우거? 몬스터냐?"
"몬스터...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 괴인이라는 건 확실해."
귀찮게스리, 진혁은 입속으로 중얼거리며 다시 길을 걸었다. 이스티는 그의 옷깃을 잡으며 방향을 안내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진혁은 골목길에 도착하면 이스티의 방향 지시를 기다리곤 했다. 이스티의 방향을 기다리며 서 있는데, 이스티가 "..여기선 직진." 이라고 말하자 진혁은 어 그래 라고 대충 대답한 뒤 부끄러움을 숨기며 앞으로 걸었다. 조금 더 가다 보니 이스티가 진혁의 옷깃을 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여기라는 뜻이리라. 진혁은 빨리 끝내고 돌아가고 싶은 마음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저 멀리서 녹색의 무언가가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몸집은 사람보다 조금 클까, 눈은 조금 붉은 색이었으며 화난 표정이었다. 진혁은 급하게 피했다. 하마터면 저 녹색 괴물과 부딪힐 뻔 했다. 죽을 위기를 넘긴 진혁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으나 저런 걸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막막하기만 했다. 녹색의 괴물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주먹으로 바닥을 쾅쾅 내려쳤다. 식겁한 진혁과는 달리 이스티는 담담하게 괴인에게 걸어갔다. 몇 마디 말을 건네는 이스티의 모습을 보며 저 꼬마는 겁도 없나 하며 멀리서 지켜보던 진혁은 괴인이 팔을 드는 것을 보자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을 느껴 달려가 이스티를 한 팔로 낚아챘다. 괴인은 그 자리에서 굳어버리고는 화가 난다는 듯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이스티는 망했다는 표정이 되어 말했다.
"뭐 하는 거야! 이 바보가!"
"뭐! 너 구해준 거잖아!"
"그게 아니라 지금 어르고 달래고 있는데 왜 나서!"
"..엥?"
저 멀리서 괴수가 뛰어오기 시작했다. 식겁한 진혁은 이스티를 안고 빠르게 몸을 피했다. 이스티는 하는 수 없이 손에서 작은 불덩이를 만들어 괴인에게 쏜다. 굉음이 들리고 땅이 쿵쿵거린다. 망했지 싶다. 진혁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상길에게 전화하려고 하였으나 주머니에서 핸드폰이 울리는 소리에 그럴 수 없었다. 상길이 전화를 걸었다는 것을 확인한 뒤 진혁은 전화를 받았다.
"상길이냐?"
"행님, 지가 차를 몰고 가고 있는데예 이상한 일이 있심다."
"어? 무슨 일?"
"어? 무슨 일?"
"어.. 앞에.... 녹색 괴물이 있는데예. 이거 어쩌면 좋겠심까?"
상길의 말을 들은 진혁은 좋은 생각이 났다는듯이 말했다.
"상길아, 차에 에어백 있냐?"
"야. 와예?"
"쳐."
"야?"
"그 녹색 뭐시기 치라고!"
전화를 뚝 끊은 진혁은 괴인이 달릴 때 꺾인 두꺼운 나뭇가지를 주워 한번 휘둘렀다. 의외로 느낌이 좋았다. 진혁은 큰 소리가 날 것을 기대하며 몸을 풀었으나 그런 소리는 좀처럼 들리지 않았다. 상길이 도망쳤다는 것을 자각하는 데까지는 15분 정도 걸렸다. 다음에 두고 보자. 속으로 중얼거리며 진혁은 슬금슬금 괴인의 뒤로 걸어가 나뭇가지를 휘둘러 등을 가격한다. 이스티는 어느새 밧줄을 꺼내 들고 괴인의 손을 묶었다. 한 번더 휘두르려는 진혁을 보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이스티를 보고 정신을 차린 진혁은 나뭇가지를 버린다. 하마터면 계속 때릴 뻔했다. 진혁은 머리를 긁고 "먼저 간다." 라는 말을 하며 길을 걷는다.
*
"아저씨, 아까 표정 엄청 무서웠어."
"니가 무서운 것도 있냐?"
"도깨비 같았어."
"..."
"화났던 거지? 왜 화났어?"
"비밀이야, 인마."
진혁은 자신을 빤히 바라보며 한숨을 쉬는 이스티를 보곤 픽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세상의 비밀이다~ 누구한테나 비밀은 있거든, 너도 있을 거 아냐."
"음.. 그러네. 아, 카페다. 나 먼저 들어갈래."
"오냐, 난 담배좀 태우다가."
왠지 피곤함을 느낀 진혁은 담배를 다 피우다 발고 뱉은 뒤 발로 비벼 불을 끈다. 오늘은 일찍 자야지. 하는 마음과 함께 좋은 꿈을 꿨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하품을 한다.
그것이 눈을 떴을 때, 세상은 그저 하나의 깊은 바다였다.
*
왜 저렇게 되어버린 걸까. 첸은 한숨을 쉬었다. 눈앞에는 쓰러진 여자와 피 웅덩이가 있었다. 닥터를 데리러 간 부리가 올 시간인데. 왜 안 오는 건지 걱정이 되었다. 첸은 뒷머리를 벅벅 긁고 쓰러진 여자를 내려다봤다. 이 여자는 사람이다. 괴인이라고 불리며 핍박받았을 그녀의 인생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아직 숨이 붙어있으나 살 수 있을 가능성은 희박할 것 같았다. 의학적 지식은 없지만, 본능적인 예감이 그리 말하고 있었다.
"니알라토텝.. 이네요."
제비뽑기로 조를 짠 뒤 사다리 타기를 통하여 괴인을 맡았다. 늘빈과 명희가 인어, 저스티와 키리에가 지네 요괴, 이스티와 진혁이 오거, 그리고 첸과 부리가 니알라토텝, 에단과 늘봄이 임프였다. 니알라토텝이라는 글자를 본 명희가 크게 한숨을 쉬었다. "왜 그러십니까?" 첸이 물었다. 명희가 답했다.
"기어오는 혼돈, 모독의 니알라토텝. 사실은 러브크래프트라는 소설에 등장하는 괴물이죠. 아마 인간이 창조해냈을 가능성이 크네요. 천의 얼굴이라는 별칭답게 모습이 아주 다양해요. 속지 말도록 하고... 촉수 조심하고. 한 대 맞으면 그대로 황천길이니까요."
불안하다. 부리는 어디에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가 큰 가방을 메고 나타났다. 소풍을 나가는 것처럼 "자, 가요~" 라고 말하는 부리를 보고는 한숨이 다 나왔다. 불안하지도 않은 걸까.
니알라토텝을 처음 보았을 때는 그녀가 그 괴인일 줄 몰랐다. 근대 영국에서 유행할법한 원피스를 입고 차가운 표정으로 골목길을 두리번거리는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는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 지경이었으나 다가가려고 할 때 부리가 그를 막아서며 '냄새'가 난다고 말했다. 무슨 냄새냐고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그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으니까. 저건 괴인이다. 라는 확신이 들었으나 이제 어찌 할 방도가 없었다. 기본적으로 명령대로 움직이던 삶이라, 고삐가 풀리지 않는 이상은 무리였다. 움직이지 않는 것은 부리도 마찬가지였다. 팀이 왜 이렇게 짜인 거지. 첸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뒤에서 무언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느낌을 받은 첸은 그 자리에서 뛰어올랐으나 그것이 구불거리며 쫓아올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하였다. 보라색의 끝이 날카로운 촉수가 그를 노리고 계속 쫓아오는 중이었다. 어느 높이까지 올라온 첸의 몸이 땅으로 떨어지며 첸은 촉수를 발라 찼다. 촉수가 기이하게 구부러지며 주춤하는가 싶더니 다시 그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닿을지도 모른다, 눈을 꽉 감았을 때 무언가를 때리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눈을 떠보니 부리가 봉을 들고 촉수와 대치하고 있었다. "뛰다가 미끄러질뻔 했었어요~ 첸이는 괜찮아요?" 라며 태평하게 묻는 부리를 보고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사방에서 촉수들이 구불거렸다. 이러다가 죽는 거 아닐까. 첸은 눈을 감으며 심호흡을 했다. 마음 같아서는 고삐가 풀렸으면 좋겠지만, 그러면 안 된다는 마음도 고개를 들었다. 촉수가 일제히 그들에게 쏟아지려고 할 때, 촉수들은 눈 녹듯이 사라져버렸고 니알라토텝은 쓰러졌으며 첸이 닥터를 불러와 달라고 부탁하자 부리는 부랴부랴 달려간 뒤 현재 이 상황이었다. 곧 닥터가 도착하고 니알라토텝은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며 치료를 시작했다. 상태가 많이 좋지 않다고 들었을 때는 뭔가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첸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 병원에서 나왔다.
*
카페로 돌아가는 길은 생각보다 길게 느껴졌다. 첸은 착잡한 마음으로 길을 걷다가 중얼거렸다.
"저 아가씨는, 괴인은... 살 수 있을까요?"
"글쎄요... 음, 기다려야죠. 어쩔 수 없으니까."
기적적으로 살아난다 하더라도 앞으로 그녀의 삶이 걱정되었다. 혹여나 괴물이라고 핍박받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며 첸의 마음은 더 착잡해졌다. "우리는..." 첸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우리는, 사람이 맞는 걸까요? 진짜 인간들이 말하는.. 사람들이 맞는 겁니까?" 부리는 첸을 빤히 바라봤다. 싱글벙글 웃던 표정이 조금 굳어졌다.
"물론이죠. 우린 사람이에요." 부리가 답했다. "괴인, 수인, 모두 사람 인(人)자를 쓰잖아요. 이것뿐만 아니라, 두 발로 걷고 생각도 하고 감정도 있어요. 우린 사람이에요."
"그렇지만 다른 게..."
"사람이에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사람처럼 행동하면 돼요. 우리가 사람이 아니면 뭐겠어요." 부리가 첸의 말을 끊고 말했다. 첸은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는 사람이니까요. 조금 다른 게 이상한 건 절대 아니니까요. 그러니까, 자기가 사람이라는 믿음을 꼭 가슴에 품고 있어요. 절대로 괴물이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
어느새 카페에 도착하여 부리는 빗자루를 들고 들어가 청소를 시작했다. 첸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잠들 수 없을 것 같았음에도 눕자마자 잠들어버렸다.
*
"치료 대성공. 좀 힘들긴 했지만.. 아, 나 커피."
정비를 하던 첸이 그 소리를 듣고는 닥터에게 달려가다가 넘어져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명희는 한숨을 쉬며 다시 책에 집중하였고 에단은 깜짝 놀랐다며 소리를 질렀으며, 부리는 청소할 것이 늘어나 기쁘다는 눈치였다. 다른 이들이 첸보고 괜찮으냐고 묻자 첸은 비실비실 웃으며 괜찮다고 답했다. 그의 눈에 작게 눈물이 고여있던 것은 모두 못본 척했다.
괴인은 괴인으로서의 힘을 대부분 잃고 정부의 지원을 받아 취업학원에 들어갔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첸은 뛸 듯이 기뻤다. 이제부터 그녀는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살아갈 것이다. 괴물이라고 불리지 않으며 하루하루가 즐겁게, 웃으며 지내기를 그는 간절히 바랐다.
사방에 손가락이 있었다. 조롱의 말을 내뱉는 손가락은 그를 가리키고 있었다. 괴물! 꺼져버려! 라는 말이 사방에 울렸다. 남자는 담담하게 손가락을 쳐다보고 있었으나,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품고 있는 기분이었다. 야유는 점점 더 심해지고 있었다. 너희 세계로 꺼져버려라! 죽어버려! 사라져! 쓰레기! 괴물! 야유들이 쌓이고 쌓여 산을 만들 수 있을 만큼이 되자, 그는 화를 참지 못하고 뛰어나가 가장 큰 손을 잡고 손의 주인을 물어버렸다. 그 손의 주인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던, 사랑해 마지않던,
그는.
에단은 움직일 수 없었다. 방금 홧김에 어떤 손가락의 주인을 물어뜯어 버렸는데 사랑하는 그의 목이 바닥에 떨어져 굴렀다. 한동안 영문을 알 수 없어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바닥을 구르던 얼굴은 왜인지 웃고 있었다. 끔찍하고, 잔인하게. 에단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지. 이건 꿈이리라. 나는 지금 악몽을 꾸고 있는 것이리라. 그것도 질이 나쁜 악몽. 에단은 웃으며 장난은 그만하고 나오라고 말했다. 이것이 악몽이 아니라면 질 나쁜 장난이겠지. 나 화났어. 지금이라도 나오면 용서해줄게. 그러나 아무도 나타나지 않고 이내 다시 수십 개의 손가락이 올라왔다. 그 손가락들은 에단과 목이 없어진 몸을 바라보며 비명을 질렀다.
사람을죽였다어휴끔찍해그러니까정말내가너무하네뭐라고그랬어저런것들은죽여버려야해언젠간사고를친다고무서워말했잖아사라져버려더러워이쪽보지마꺼져네가무슨죽였어저런게있을까저러고도뭐하냐사람이라고사라져라할수있을까자살해네잘못이야죽어버려우리를위해어서빨리죽어버려누가부탁이야저것좀없애버려죽여줘누구없어요저사람을좀아니사람도아니잖아죽여버려죽여버려죽어버려죽어버려죽여죽어죽여죽어죽여죽어죽여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 너 같은 괴물은 죽어버려.
*
고의는 아니었다. 그녀는 위험해 보여서 총을 쏜 것이였고, 절대 누군가를 맞추려는 의도가 아니었으며, 그저 단순한 위협용일 뿐이었다. 그러나 누군가 맞는 소리가 들렸고, 그 소리에 놀라 힘들게 달려가 보니 익숙히 알고 있던 남자가 쓰러져있었다. 보라색 머리의 장신인, 너무나도 잘 알고 있던 그 남자가 피가 흐르는 배를 손으로 감싸고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고 있었다. 그녀는 놀라 무엇을 해야 할 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자신이 사람을 쐈다. 그런 생각을 하니 손이 부르르 떨렸다. 눈물이 날 것 같았는데, 누군가 어깨에 손을 올렸다.
"잘했어, 누나!"
남동생이었다. 뭘 잘했다는 것일까. 자신이 저지를 것은 죄일 텐데. 남동생은 싱글벙글 웃으며 말을 계속한다.
"더러운 괴물을 죽였잖아. 훌륭해. 진혁이형도 지금 괴물들을 잡고 있거든. 이제 완전히 인간의 세상 귀환! 같은 거야. 기쁘지?"
솔직히 말하면, 무슨 소리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같은 동료 아닌가. 그런데 괴물이라니. 물론 조금 다르긴 하겠다. 그러나 그들도 어엿한 인간이 아닌가. 심지어 지금 쓰러져있던 남자와 친했던 남동생의 말이었기에 충격은 더 컸다. 그런 누나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동생은 말했다.
"지금 개하고 늑대, 고양이가 도망치고 있고 요정 꼬맹이는 죽었어. 내가 죽였지롱! 그리고 재수 없는 마족 여자애는 자살했더라. 내가 죽이고 싶었는데. 아무튼 누나! 같이 잡으러 가자. 괴물 사냥이야. 자, 내 손 잡고 일어나."
남동생이 내민 손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은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꿈이리라. 그녀는 남동생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남동생을 올려다보며 말한다. 미안, 빈아. 내가 좀 피곤해져서. 오늘은 먼저 카페로 들어갈게. 남동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착한 남동생인데, 어쩌다가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가, 아니면 내가 지금까지 꿈을 꿔온 것인가. 여자는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
'
'
*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
"저기, 하늘봄씨, 에단씨. 괜찮으신가요?"
낯설지 않은 목소리에 늘봄과 에단은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켰다. 자신들이 누워있던 곳은 차가운 길바닥이었으며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목소리의 주인은 손에 작은 무언가를 들고 있었는데 그의 손에 잡힌 그것은 빽빽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미스터는 다행이라는 듯이 웃었다. 선글라스 때문에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늘봄과 에단은 영문을 몰라 그저 그와 그것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뭔가 푹 잔 기분이었다. 꿈도 꾸지 않고. 미스터는 말했다.
"아마 이 녀석이 장난을 쳤나 봐요. 카페에 가는 길이었는데 두 분이 길가에 쓰러져있고 이 녀석이 두 분의 머리 위에서 춤을 추더라고요. 몰래 뒤에서 잡기는 했습니다만. 무슨 악몽이라도 꾸셨나요?"
둘은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푹 쉬었던 것 같아요. 늘봄이 말했다. 에단도 응. 카페 가서 일 열심히 할 수 있는 체력이 된 것 같아. 라고 답했다. 미스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손을 내밀어 둘을 일으켜주고 카페로 걸어간다. 미스터가 말했다.
"제가 뭔가 오해를 하고 있었나 보네요. 원래 임프는 사람들에게 환영을 보게 한다는데 말이에요. 오히려 도움을 주는 존재였군요."
에단이 그의 말을 받았다.
"그러게. 착한 아이였구만."
"귀엽기도 하고요."
늘봄이 웃으며 임프의 볼을 손가락으로 쓰다듬자 임프는 기분이 좋은 듯 웃었다. 아마 그들 셋은 단단히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았으나, 그 오해는 전혀 나쁘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카페에 돌아온 늘봄은 늘빈이 오늘 있었던 일을 말하며 하마터면 인어밥이 될 뻔 했다고 하는 말을 들으며 지금은 건강하니 괜찮네. 라고 답하곤 숙소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그렇게 푹 쉬었으나 여전히 좀 피곤한듯, 일기를 쓰는 것도 잊은 채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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