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도착한 남성의 잘린 머리는 그리 끔찍한 정도는 되지 않았다.
검은 머리카락은 말끔하게 이마를 드러낸 채 뒤로 넘겼고, 눈은 감고 있었으나 눈꺼풀을 들어 올렸을 때 보인 눈동자가 푸른색이었던 것을 보면 색 조합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과한 기색 없이 붉은 입술은 얌전히 그 끝이 올라가 있었기에 그가 평소에 자주 웃었을 거라고 예상할 수 있었다. 잘린 머리를 마주하는 상황에서 표정을 따질 처지야 되겠냐만 이런 경우도 한두 번이 아니니 지레 겁을 먹고 패닉에 빠질 필요도 없다. 코끝은 조금 동그랗지만 콧대가 높아 봐줄만했고, 귓불이 넓은 것이 마음에 들었다. 강한 눈썹도 좋은 점수를 줄 만 하였고, 갸름하나 뭉툭하게 각이 진 턱 선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지금까지 15번씩이나 겪은 사건 중 가장 좋은 조건일지도 모른다, 고. O는 생각했다.
그것이 화분에 꽂혀있는 남성의 잘린 머리만 아니라면 말이다.
*
잘린 머리는 화분에 꽂지 마세요!
*
“이번으로 열다섯 번째야?” P의 물음에 O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보기엔 어떠냐.” 남성의 잘린 머리를 유심히 바라보던 P는 O의 말에 고개를 젓는다. “화분 선정이 구려.” 동감이야. 답하며 O는 이름 모를 남성의 잘린 머리가 꽂혀있는 화분을 다시 상자에 집어넣는다. 화분을 들었을 때의 묵직함이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라, 이럴 때면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O는 이제 제발 남성의 잘린 머리가 그만 좀 도착했으면 좋겠다고 얼굴도 모를 신에게 빌었다. 반송되는 머리는 다시 머리의 주인 목 위에 붙어, 이 남성은 멀쩡히 살아날 것이었다. 실연의 아픔은 목을 자를 때의 아픔보다는 아프지 않겠지. 박스 테이프로 상자를 포장하는 것 까지 마친 O는 소파에 드러누워 택배 회사에 연락을 보냈다.
TV에서는 유명 연예인 부부의 결혼 일화에 대해 이야기 하는 토크쇼가 진행되었다. 그 배우의 머리가 꽂혀있던 화분이 글쎄~부터 시작하여 상자 뜯을 때부터 느낌이 좀 이상했어요. 저한테 택배 올 게 없었거든요. 상자 뚜껑 열었을 때는 기겁을 했죠. 라는 웃음기 섞인 여배우의 인터뷰까지. P는 어느새 과일을 깎아 와서 거실 바닥에 앉아 TV를 보며 허허 웃었으며 O는 잠깐 눈을 감고 있다가 눈을 떠 가볍게 손을 뻗어 사과를 하나 집어 입에 넣었다. 사랑에 빠진 남성이 자신의 머리를 잘라 화분에 꽂고 그것을 사랑하는 여성에게 보내는 풍습은 여전히 클래식한 고백 방법으로 널리 사랑받고 있지만, O는 도저히 이러한 풍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화분에 얌전히 꽂는다는 점이 그나마 나을까 싶기도 한 것이……
“누나,” P가 빈 접시를 집어 들고 일어나며 O를 바라봤다. 응? 되묻는 것에 그는 하고 싶은 말을 하는 대신 좀 일어나라, 좀. 하는 딴죽을 걸고 부엌으로 걸어간다.
“잘린 머리 받은 거 엄마한테 말 할 거야?”
그 질문을 받기 전까지만 해도 여전히 드러누워 있던 O는 질문이 무슨 전기충격이라도 되는 것 마냥 몸을 크게 떨며 일으켰다. 홱 돌아본 뒤 고개를 크게 저어보이곤 “미쳤냐? 또 무슨 소리를 들으려고.” 하는 것이 O의 답이었다.
P는 짐짓 난처한 듯 웃음을 그렸으나 금방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였다. 하긴, 이 얘기가 어떻게든 밖으로 새면 어머니께서는 이렇게 말 할 것이다. “도대체 그 남자들이 뭐가 부족하다고 거절하는 거니? 너도 곧 결혼해야해. 네 주변 친구들 다 결혼하는 것 좀 봐!” 이후에 최소 한 시간 이상은 이와 비슷한 내용들이 계속 반복될 것이다. 결혼하고 나서 좋은 점을 설명하는 것은 그러려니 하더라도, O와 P는 어른들이 잘린 머리를 화분에 꽂아 택배로 보내는 것으로 고백하는 것이 얼마나 낭만적인지에 대해 설명하는 말을 듣고 있으면 같은 나라의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합리적 의심을 품게 되었다. 특히나 어머니의 사례는 보다 더 끔찍했는데,
“그 잘린 머리를 받았을 때 얼마나 심장이 뛰었는지 아니? 이게 사랑이 아닐 리가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니까. 너희 아버지에게는 비밀이다만은, 그 잘린 머리에 나도 모르게 입을 맞추고 싶어졌어. 그래서 해봤는데 차가운 게 짜릿하더라고. 그런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게 여자의 기쁨이야. 요즘 어린 애들은 배가 불러가지고 그런 낭만을 이해를 못 한다니까!”
와 같은 내용을 들으며 O는 분명 엄마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던 이유는 겁을 먹어서였을 거라고 믿었다. 단체로 미친 게 아니고서야 누군가의 잘린 머리를 택배로 받았는데 그걸 사랑으로 오해를 하는 것이 말이나 되는가. 다만 이런 반박을 제기해봤자 세대차이라는 말로, 혹은 너는 애가 참 특이해서~ 같은 문장으로 철벽방어를 할 것이 분명하여 굳이 입 밖으로는 제 생각을 내지 않았다. 이야기를 마칠 때에 엄마는 늘 다음과 같이 덧붙이곤 했다. “요즘은 세상이 좀 세련되게 변해서 잘린 머리만 달랑 보내는 게 아니고 화분에 꽂아 보내는데 뭐가 그렇게 불만인지 모르겠다. 참! 여기서 뭐가 더 변해야 하는 거니?”
아니 그럼 예전에는 잘린 머리를 그냥 보냈단 말이야? 어렸을 적, 처음으로 잘린 머리를 받고 나서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O는 그 자리에서 기겁하여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러나 발은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는데 반쯤 열린 제 방 문으로 넘어가면 화분에 꽂힌 남성의 잘린 머리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옆에서 축구 중계방송을 보던 아버지는 코웃음을 치며 예전에 자기 친구 놈은 형수님 붙잡겠다고 학교에서 머리를 잘라가지고, 우리가 신문지로 둘둘 포장해서는 옆 반에 있는 형수님한테 쥐어서 줬잖냐. 같은 얘기를 그리운 추억이라도 떠올리는 것 같은 말투로 이야기했다. 옆 학교 남자애가 기다리고 있다가 고백하고 싶은 애가 나오면 그 자리에서 머리 잘라가지고 굴리는 것도 흔한 일이었어. 그 말까지 듣고 나서 O는 그만 기절했다.
속이 메슥거리기 시작한 O는 P에게 상자를 바깥에 내달라고 부탁했다. P는 별다른 투정 없이 상자를 들어 올렸으며, 잠깐 무겁다는 불평을 하고는 현관문을 열어 문 앞에 상자를 내려놓았다. 손을 털며 들어온 남동생에게 손을 씻으라고 명령한 O는 그가 화장실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쉰다. 쟤는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지 말아야 할 텐데. 만약 이 집 안에서 머리를 자르겠다고 설쳐대면 견딜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집을 나가거나 쟤가 집을 나가거나, 아니면 내가 끔찍한 걸 꾸역꾸역 참으며 남동생의 목을 잘라줘야겠지. 그의 첫사랑을 위해서.
사랑에 빠진 남성이 용기 있는 행동으로 사랑하는 여인을 쟁취한다는 말은 상당히 오랜 격언이었다. 이 세계는 그런 격언에 딱 맞춘 듯, 세상에서 가장 용기 있는 행동인 자신의 머리를 자르는 것으로 남자들이 스스로의 용기를 자랑하며 사랑을 고백한다. 언제 시작되었는지 모르는 이 전통은 남자라는 존재가 목 윗부분이 잘려나가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과학적 사실이 밝혀지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에 물꼬를 틔웠을 것이라고 역사학자들은 추정하지만, 이렇다 할 제대로 된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근본이랄 게 없는 전통은 예전부터 그래왔다는 문장으로 퉁침으로써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지 않나. 이제 좀 한숨 돌리나 싶어 TV를 켜보면 토크쇼에서는 또 잘린 남성의 머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런데 왜 남자들만 머리를 자르고도 살아있어?”
O는 한숨을 쉬고는 P를 바라봤다. 넌 아냐? 학창시절 남학생과 여학생이 다른 교실에서 다른 내용의 성교육을 들으니 P라면 알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이런 끔찍한 방법에 찬성하고자 하는 것은 절대 아니고—더구나 곧 밝혀질 모종의 이유로 인하여 O는 이런 방법의 수혜자가 될 수는 없다.—그저 궁금했을 뿐이다. 너무 끔찍하고 더는 이런 일을 겪고 싶지 않으니 원인이 되는 부분이라도 알게 되면 대처방법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P는 그런 누나의 기대를 알아차렸는지, 아닌지 모르겠다는 듯 눈을 멀뚱멀뚱 깜빡이다가 “글쎄다….” 하며 문장을 질질 끌었다.
“모르겠는데. 남자한테 머리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기관이어서 그런 거 아니야?”
“너도 남잔데 남자들한테 꽤 심한 말을 하는구나.”
O는 눈을 게슴츠레 뜨며 P를 바라봤다. P는 반박하는 기색이 없이 멍한 얼굴로 리모컨의 버튼이나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그렇지만 남자들 다 그렇잖아. 본능을 억제 못 한다고… 머리가 잘려도 살아있는 거면 뇌가 그리 큰 역할을 하지 않는 거겠지.”
내가 남자는 본능을 억제 못 한다는 말에 찬성한다는 건 절대 아니고. P가 급하게 덧붙이면 O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요는, P도 어렸을 때 뭘 들은 내용이 없다는 것이 되겠다. 아니면 이 새끼가 배우는 시간에 엎드려서 자느라 못 들었거나. 그렇지만 남학생들이라면 성교육 시간에 눈을 번쩍번쩍 빛내고 손 한 번 안 들던 놈들도 번쩍번쩍 손을 들 텐데… 하는 의심은 일단 접어두었다. 지금 그런 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문득 시계를 바라보니 몇 시간 뒤 약속시간이었다. O는 자리에서 일어나 제 방을 향해 걸어간다. P도 무언가 생각났는지, 아니면 잘린 머리 소식에 질렸는지 TV를 끄고 일어났다. 그가 문득 누나를 부른다.
“여자 친구한테는 말 할 거야? 오늘도 잘린 머리 받았다고?”
O는 잠깐 난처한 표정을 지어보이더니, 금방 고개를 끄덕였다.
“반송했다는 얘기까지 해줘야지. 바로바로 말 하는 게 편해.”
길거리에는 손을 잡고 걷는 남녀가 숱하게 보였다. 저 남자들 전부 한 번 씩 자기 머리를 잘라봤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 O는 결국 스마트폰에 고개를 박을 수밖에 없었다. 금방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고개를 들면 K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먼저 와있었네.” “아니야, 나도 금방 왔는데.” 그런 대화를 나누며 두 사람은 길을 걷는다.
잘린 머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었으나, 이번으로 열다섯 번째구나. 하는 K의 감탄에 O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금방 K의 가벼운 웃음소리와 별로 아무렇지도 않아. 하는 말에 고개를 들 수 있었지만. 그런데 어디서 본 사람이야? 라는 물음에는 잠시 고민하다가 아마 카페에 일했을 때 몇 번 마주친 손님 같았는데…. 하고 기억을 더듬었다. 그러고 보니 또 잘린 머리를 받았다는 사실이 참담하여 그 머리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주소는 또 어떻게 알게 된 건지에 대해서도.
“아무리 생각해도 호러라니까. 잘린 머리가 배달 오는 거.”
O의 한숨 섞인 목소리에 K가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O와 K의 친구들이 모이면 제일 많이 나오는 얘기가 잘린 머리에 대한 것이었기에, 이게 오로지 나의 일만이 아니라는 것을 O는 안다.
“여자들도 머리를 자를 수 있었으면 내 머리는 받을 거야?” 문득 K가 궁금한 게 생긴 듯, 걸음을 멈추고 O를 바라보며 물었다. O는 잠깐 고민했다. 어쩌면 그럴 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여전히 잘린 머리는……. 조금 복잡한 기분으로 K를 내려다보고 있으면, 금방 사랑스러운 웃음을 터트리며 아니야, 아니야. 하고 말하는 K가 있었다.
“순간 고민도 없이 받겠다고 하는 거 아닌가 싶어서 걱정했어.” K는 O의 손을 가볍게 붙잡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어안이 벙벙해진 O는 따라 걸으며 그의 다음 말을 기다린다.
“나는 내 머리를 잘라서 남에게 보내주거나 그러고 싶지 않거든. 남들 다 좋다고 하지만… 끔찍하잖아.”
머리 위가 잘려나가도 움직이는 내 몸이라니. K가 덧붙이며 몸을 파르르 떨었다. 하기사, 이런 끔찍한 것들이 아예 없어지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고. O는 생각한다. 이제 O의 눈에는 손을 잡고 걷는 이들보다 혼자 걸어가는 이들이 눈에 띄었다.
“예전에도 머리 자르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거야.” 찬바람이 불어오는 거리를 느리게 거닐며 O가 말한다. 그리고 잘린 머리를 받기 싫어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자기 머리를 자르고 싶은데도 자를 수 없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세상에 사람이 하나 둘 있는 것도 아니니까. 머리를 자르는 방법 말고도 다른 고백 방법이 많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지만, 여전히 다른 고백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시선들도 가득했다. 이상하고 이상하지 않은 것의 경계를 누가 정해놓은 것도 아닌데 말이다.
깊은 생각에 빠져있던 O의 손을 잡아끄는 것은 역시 K였다. O는 자기보다 키가 약간 작은 K를 내려다보며 작게 웃는다. 머리를 자르지 않아도 진심은 전달되는 법이고, 잘린 머리가 없어도 감정은 전달할 수 있는 것. 금방 갓 찐 만두를 파는 가게 앞에서 고기만두를 주문하는 K의 옆에 서서 같은 것을 주문한 O는, 한 손에 만두를 들고 마찬가지로 한 손에 만두를 쥔 K에게 인사하듯 말을 건넨다.
“좋아해.”
잘린 머리로는 절대로 건넬 수 없는 한마디를.
✂
가볍게.. 쓰고 싶었던 거 샤샤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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